이상한 상황극

버스 안. 치지직. 안녕하십니까, 오늘도 저희 버스 7719편을 이용해주시는 손님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는 여러분을 북가좌동에서 녹번역까지 모시고 갈 기장 칠일구 입니다. 지금 현재 저희 버스는 고도 4피트, 속도 약 50키로미터로 운행하고 있으며 현재 서부병원을 지나고 있습니다. 녹번역까지는 약 11분 소요될 예정이며 도착 시각은 녹번역 현지 시각으로 09:05 분 이 될 예정입니다. 도착 당시 녹번동 날씨는 맑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여러분을 모시고 가는 동안 안전한 여행이 되기 위해 노력하겠습니다. 즐거운 여행되시길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비행기 안. 카카오 호출 알림. 기장님이 자식 자랑을 시작하는데, 오늘도 야근했나봐요? 결혼은 했어요? 우리 딸이 이번에 미국으로 대학원을 갔잖아요. 아유 얼마나 예쁜지, 근데 결혼을 안할거라고 해서 걱정이야. 우리 아들은 고3인데 매일 전국 1등을 해 누굴 닮았는지 기특해. 이번에 수석입학했어. 나는 비행기 하기 전에 미군부대에서 일했는데 영어는 거기서 다 배웠어 아 저기 로마 공항에서 세워주면 돼요?

택시 안. 할머니 여기 앉으세요. 아유 괜찮아 나 좀 이따 내려. 앉으세요~ 아이구 괜찮다니까. 아유 아이구아이구, 아이구! 다리야!! 학생 고마워요. 이번 정류장은 목적지입니다. 삐- 아 기사님 내려요 문 열어주세요!

역시,

안 맞는 곳에 억지로 단추를 끼워 맞추면 입은 꼴이 어색해지고 마는 것이다.

들어서 죄송한데

‘나를 지키며 일하는 법’이라는 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중이었다. 인문학 책을 읽을 때 최적의 음악인 take five는 삶에 대한 고찰을 하기에도 안성맞춤이다. 엄마, 분유 이제 180ml 먹여도 될 것 같애. 180미리가 얼만큼이냐구? 네 숟가락 반. 응. 알았어. 난 지금 책을 읽으며 출근하는 중이다. 음악도 잘 듣고 있다. 옆사람의 이야기가 오른쪽 귀에 섞여 들리기 전까지는.

너만 지각이야? 우리 둘 다 지각이잖아. 너 지금까지 출근할 때 애들 챙긴 적 한 번이라도 있었어? 그렇게 남편이라는 사람이 늦잠으로 본인 출근 준비만 하고 나가버린 모양이다. 말투가 점점 격해지고 그걸 가만히 듣다가 덩달아 열이 받아버린 나를 발견했지. 이게 바로 한국 워킹맘의 현실이라고. 어쨌든 내리기 한 정거장 바로 전에 내린 그분 행복하셨으면 좋겠다.

박웅현 강연을 듣다

올해 6월,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책을 구경하다 문학동네 부스를 발견했다. 북적거리는 가운데 북클럽 연간 멤버십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혜택 안내문의 한 부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생책 「여덟단어」 의 작가 박웅현 님의 강연이라니.

「생각의 기쁨」, 「모든 요일의 기록」 을 연이어 읽으며 두 작가가 직장 동료라는 걸 알고, 그들에게 오래도록 존경받는 팀장님이 동일인물이란 걸 알게 되고, 그 팀장님이 너무나도 궁금해 읽게 된 여덟단어가 인생책이 되고, 이렇게 강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이 내 손에 운명의 끈을 쥐어준 것이다. 강연만은 꼭 듣겠다는 생각으로 멤버십에 가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D-day.

장비를 믿지 말 것

이번 강연은 신촌 메가박스 3관에서 진행되었다. 강연장을 상영관으로 택한 이유는 그가 최근 제작한 광고 영상과 연결되는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었다. ppt에는 거친 캘리그라피만이 있었고 그걸 자연스럽게 말과 영상으로 이어가야 했는데, 이를 어쩐다… 리모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무대 뒤쪽에서도 컨트롤이 안 되었다. 적막 속에서 페이지가 앞으로 갔다가, 뒤로 넘어갔다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강연자가 프레젠테이션의 스토리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영상을 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영상은 나중에 유튜브로 찾아 보면 되지만 아쉬움은 컸다. 만약 이 모든 순서들이 착착 진행되었다면 오늘의 이 강연에서 어떤 형태로든 울림을 받았겠지. 마이크 잡음이 너무 심해 말도 잘 안 들렸고, 점점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작가님의 센스와 순발력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작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보다는 어렵게 자리한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더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강연은 바로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눈물샘이 터지다

어떤 독자가 책에서 소개한 노래를 듣고 울림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강연 초반에 들었다.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가 태어나 병원에 입원했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이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 엄마는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한 Pink Martini의 Splendor in the Grass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그 후로 아이 면회를 가는 길에 매일 그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분은 그 울림을 통해 「일상이 독서다」 라는 책을 냈고 그 책을 박웅현 작가에게 보내왔다. 박웅현 작가는 책의 일부를 관객에게 읽어 주었다. ‘울림’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경험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질의 응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은 어느 분이 마이크를 들었다.
“아까 그 책을 보내드린 독자가 바로 접니다.”
코끝이 찡했다. 이런 감동적인 만남은 정말 처음 보았다. 아이엄마는 아이가 건강해져 지금 여섯 살이 되었다고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눈물이 핑 돈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퇴사예정자가 얻은 인사이트

이번 강연은 질의응답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없다면 정말 의미가 많이 줄어들고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질문들이 영양가 높은 건강식품처럼 머리와 가슴을 풍족하게 해 주었다. 나는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달이면 퇴사 예정이었기에 불안함이 아예 없지 않았다. 내 인생의 멘토인 박웅현 님에게, CD로서 조언이나 격려의 메시지를 듣는다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될 것 같았다.
소심하게 손을 들었으니 지목이 될 리 없지. 질문은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27살의 심리학과 전공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고, 돈도 안 될 텐데, 하지만 이미 등록금은 다 내 버린 상태라고.
그에 대한 답변에 나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은 다 잘 된 겁니다.
그 이유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정리해보면, 내가 한 모든 선택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다 잘 된 겁니다. 따라서 자기가 한 모든 선택이 옳은 것이 되게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정말 충분한 고민을 한 후에 49:51로 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라는 말에 울컥 쏟아졌다. 지금 이 곳에서 오랫동안 일 해 온 것도 나의 결정이었고, 퇴사를 결심한 것도 내가 많이 고민한 결과다. 내가 한 선택은 다 옳다. 아니, 옳다고 단언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강연이 아무리 길다고 한 들, 유명한 연사가 온다한 들 영감을 얻을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인문학 강연이 너무 좋다.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

사랑하는 계절

자고 일어나니 바깥이 너무 환하다. 현관문을 열자 눈 앞은 온통 새하얗다. 나무 한 그루가 우두커니 서 있는 드넓은 눈밭. 다행히 아직 아무도 지나가지 않았다. 세상 모든 빛을 머금고, 눈부신 1월의 들판이 나를 기다린다. 눈을 찡그리는데 그 기분이 꽤 괜찮아 잠시 웃어 본다. 차갑고 맑은 공기를 힘껏 들이마신다. 상쾌함. 찌뿌드드한 몸을 쭈욱 폈다가 숨을 내쉰다. 그윽한 입김. 눈밭에 첫번째 발자국을 남긴다. 포드득, 하는 소리와 함께 부츠 모양이 꾸욱 찍힌다. 그대로 한 발, 한 발 앞으로 걸어간다.
아름드리 나무 앞에 도착해 뒤를 돌아본다. 구름이 없는 하늘, 그리고 반짝이는 하얀 빛들의 향연을 만끽해 본다. 겨울의 공기, 그리고 근근히 들려오는 새들의 노래소리가 전부다. 저 멀리 이웃집에서 연기가 피어오른다. 나도 나갈 준비를 해야지.

그 계절이, 오고 있다.

CA CON 86 – Airbnb Design System 후기

https://www.cabooks.co.kr/con-86

사내에서 디자인 시스템을 도입하기 위해 디자인, 개발팀이 노력하고 있다. 아직은 디자인시스템이라 명명할 수 없고 다져지지도 않은 상태지만 체계적이고 명료한 가이드가 제공된다면 좋을 것이라는 건 모두의 최종 goal인 듯하다. 그런 의미에서 평소 굉장히 섬세하게 짜여있다고 생각했던 Airbnb 디자인 시스템에 관한 이야기는 꼭 한 번 들어보고 싶었다. 이번 컨퍼런스는 에어비앤비 디자인시스템 팀을 총괄하는 한유진 디자이너가 스피커를 맡았다. 총 세 번의 세션으로 나누어 진행이 되었는데, 단어 하나 놓치고 싶지 않을 정도로 유익했다. 나에게 맞는 상황들이 많았기 때문에 더욱 공감되었던 것 같다. 디자인 시스템 이야기 뿐만 아니라 디자이너로서 어떻게 살아가야 할 지 생각해볼 수 있는 시간이었다.

 

왜 디자인 시스템이어야 하는가

‘디자인 시스템을 갖추면 좋을 서비스’란 어떤 것일까. 제품의 서비스 채널이 점점 다양해지고, 빈번하게 마이너 단위로 개발 업데이트를 하는, 내가 맡고 있는 서비스가 바로 그런 케이스였다. 오늘 이 컨퍼런스가 공감갔던 가장 큰 이유였을 것이다. 개발 사이클이 빨라진다는 건 버그 개선 등 패치할 게 많다는 뜻이겠지만, 고객의 목소리에 맞게 서비스 제공자가 더욱 신속히 대응하고 있다는 이미지를 심어주기도 한다(업데이트할수록 나아진다면). 유저들의 안목도 상당히 높아졌기 때문에 점점 기대하는 바도 커지고 있다. 디자인 또한 점점 성숙해지고 있다. 따라서 더욱 빠르고 일관성 있는 디자인을 제공해야 할 것이다.

규모가 크고 다채널을 보유하고 있는 프로덕트가 디자인 시스템을 갖는다는 것은,

  • 어떤 채널에서도 일관된 사용자 경험을 제공할 수 있다는 점
  • 언제든 재사용이 가능하다는 점
  • 빠른 속도로 고객의 니즈에 응대할 수 있다는 점
  • 지속적인 업데이트와 확장이 가능하다는 점
  • 사용자의 통점을 해소하기 위한 고민을 할 시간적 여유를 확보할 수 있다는 점

등에서 엄청난 무기가 될 것이다.

‘디자인 시스템은 제한적이다, 유연하지 못하다’ 등을 단점으로 드는 경우가 있다고 한다. 서비스 규모가 크다면 디자인 가이드만으로는 해결할 수 없는 영역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컨텐츠의 특성이나 개성을 나타내거나 시각적으로 변형을 주어야 하는 부분이 분명히 생기고, 그걸 표현하는 과정에서 제약이 발생하는 것이다. 나도 비슷한 일을 경험한 적이 있다. 공통 컴포넌트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그걸 사용하는 과정에서 ‘공통을 따라야 하기 때문에 디자인을 할 수가 없다’는 부정적인 반응이 나왔었다. 이같은 문제점은 가이드라인을 따르되, 커스텀할 수밖에 없는 영역에 대해서는 협의를 통해 추가적인 컴포넌트를 제작하는 것으로 해결 가능하다. 
에어비앤비도 Core Library / team Library 로 나누고 한정적으로 사용하는 컴포넌트에 관해서는 공유를 거치지 않는다고 한다. 디자인 시스템은 ‘재사용’하려는 목적을 갖기 때문이다. 어떤 문제든 지혜롭게 해결할 방법은 있으므로, 단점이라 오해하는 일들에 대해서는 커버가 가능하다.

이렇게 복잡한 협의 과정을 거치고 많은 고민을 통해 완성되는 탬플릿들은 개발 단계에서도 파운데이션이나 컴포넌트의 네이밍 등 동일한 코드 규칙으로 만들어져야 비로소 ‘디자인 시스템’이라 이름을 붙일 수 있다. 따라서 이런 구조적인 혁신을 이루기 위해서는 ‘조직간 커뮤니케이션’이 가장 중요하다. 위 페이지를 통해서 다시 한 번 느끼고 왔다. 첫번째 세션에서 가장 와 닿았던 페이지였다. 조직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응집력 있는 문화를 함께 만들어 가는 것, 정해진 소수 팀의 헌신으로는 절대 완성될 수 없다는 것. 충분한 소통이 있지 않다면 디자인 시스템은 탄생하기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디자인 시스템 관련 글을 읽거나 컨퍼런스에 다녀오면 늘 왠지 모를 씁쓸한 기분이 든다. 하하하. 더 노력해야겠다.

에어비앤비 디자인 시스템 케이스 스터디

에어비앤비의 디자인은 한 사람이 디렉팅하기 어려울 정도로 제품이 복잡해지고, 팀의 규모가 점점 커졌다. 그들은 급속도로 확장되는 서비스를 커버할 수 있도록 정형화된 가이드라인의 필요성을 느꼈고 2016년 1월, 작은 디자인팀 규모로 디자인 시스템을 도입했다고 한다. 기존 디자인은 웹에 포커스를 두고 있었는데, 당시에 모바일 부킹 수가 폭등하고 있었기 때문에 모바일 우선으로 변경했다고 한다. 해당 작업은 스크린샷을 모두 찍어서 플로우별로 나열 하고 공통적으로 적용할 요소를 분석해보는 것으로 출발했다.

새로운 비주얼 스타일을 적용하는 시점에서 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하는 사항이 있었다. ‘접근성
, accessibility’이었다. 현재 에어비앤비의 메인 컬러인 *RAUSCH 컬러는 명도 대비가 3.1:1로, 최저 허용치에 겨우 달하는 수준이었다.
 에어비앤비는 사용자 타켓이 굉장히 다양하고, 그중에는 장애를 가진 유저도 많이 있을 것이므로, 단지 그들 뿐 아니라 모두가 이용함에 불편함을 주지 않기 위해 접근성을 준수하는 방향으로 디자인을 개선하였다. 그래서 라우쉬 컬러 대신 청록 계열인BABU 컬러를 주로 사용하게 되었다. 이로써 컬러 대비는 4.5:1 정도로, 누구나 보기 편해졌다. 현재는 메인 컬러보다 명도 대비가 상대적으로 높은 서브컬러를 이용하여 사용성을 개선한 상태이나, 이후 컬러 사용에 대해서는 메인 컬러를 사용하면서도 접근성을 준수할 수 있는 방향으로 브랜드 팀과 함께 계속해서 고민하고 있다고 한다.

dls-foundation
이미지 출처 https://airbnb.design/building-a-visual-language/

에어비앤비 디자인은 머터리얼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iOS의 HIG를 따르지 않고 독자적으로 디자인했다고 한다.

 전혀 색다른 형태의 비즈니스 플랫폼을 가지고 있고 여러 분야로 확장되다 보니 머터리얼 디자인 가이드라인이나 HIG만으로는 일관적인 디자인을 하기에 한계가 있지 않았을까 생각했다. 그래서 에어비앤비는 한유진 디자이너가 말하는 ‘레고블럭 맞추기’ 방식으로, 파운데이션, 컴포넌트, 탬플릿, 페이지의 구성으로 어떤 디바이스에서도 일관된 경험을 할 수 있게 되었다고 한다.


*RAUSCH 컬러가 무엇인지 궁금해서 검색해 보다 알게 된 사실. 10년 전, 샌프란시스코 라우쉬 거리에 있던 아파트의 다인실이 에어비앤비의 최초 숙소라고 한다. 몹시 의미 있다. 대박스!

 

해외에서 디자이너로 살아가기

이 세션을 들었을 때의 느낌을 한마디로 말하자면, ‘와….정말 독하다’ 였다. 남들보다 몇 배나 더 열정적이고, 남들보다 더 노력하고 더한 완벽을 추구했던 것 같다. 내가 OK할 때까지 디자인하는 디자이너. 남들이 시안 3~5개를 보여줄 때 한유진 디자이너는 20개의 시안을, 그것도 퀄리티의 끝판왕으로 보여줬다고 한다. 스스로에게 만족하는 것이 가장 중요할 것이다. 거기에 리더와 동료들에게 인정받는 것 또한 많은 영향을 받았을 거라 생각한다.

두 번째 또 놀라웠던 점. 언어도 전혀 되지 않는 상태에서 무작정 해외로 떠나서, 차를 사기 위해 모아둔 돈을 6개월만에 다 써버리고 통장 잔고가 0이 되었다면 나는 어떻게 했을까? 내 동료는 당장 집에 전화를 한다고 말했고, 나는 거지가 됐을 거라 말한다. 난 정말 멘붕이 왔을 것 같다. 아니 그 전에, 통장에 돈이 줄어들고 있는 걸 보면서 쫄아 있었을까도 싶다. 아니 그 전에, 해외로 나가려면 이것 저것 걸리는 것도 많고…하면서 망설이는데 시간을 썼을 것이다.(실제로도 그랬다지) 그런데 한유진 님이 가장 스트레스 받았던 점은, 해외에서 먹을 것 못 먹고 사는 것보다 한국에 있는 동료 디자이너들이 승승장구 하는 걸 보며 자괴감에 빠지게 된 것이었다.

뉴욕에서 일하면서 그는 런던 시간에 맞춰 일을 했다고 한다. 밤낮이 바뀐 것이 중요하지 않았던 것이다.
 위 아래 관계가 분명했던 한국과는 달리, 디자인 할 때마다 “
You are the best design ever.” 라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해외 문화. 그리고 누구나 서로의 의견을 자유롭게 얘기하며 좋은 방향으로 발전해가는 문화는 디자이너로서, 인간으로서 더 없는 긍정적 자극으로 다가오는 요소다.

의지와 열정과 노력, 그리고 그걸 알아주고 인정해주는 리더. 
디자인에 대한 열정과 끈기, 오기. 삶의 멘토, 진취적인 마인드, 실행력, 그리고 신이 주신 타이밍 등, 19년 간의 디자인 인생 이야기를 들으면서 지금보다 더 열정적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생각했다. 올해 들은 발표 중에 가장 인상적이고 유익했고, 가슴이 두근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