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싱글맨

‘창조의 탄생’을 읽다가 궁금해진 작가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 베를린의 소설가라고 한다. 독일이 분단에서 통일로 넘어가는 시절에 활동했던 작가로, 소설 속에서 당시의 시대상을 볼 수 있다고 하여 책을 찾게 되었는데, 그 중 하나는 「노리스씨 기차를 갈아타다」, 다른 하나는「싱글맨」이다.

싱글맨, 2009

서점에서 구매하려고 찾아보니 품절이어서 도서관에서 빌리게 되었다. (사실 도서관 정회원도 처음이고, 도서대출도 처음이다. 빌려 보는 것도 재미있다)

오랫동안 많은 사람들에게 읽힌 흔적

2009년 발행된 책이라 벌써 거의 7년 정도가 되었다. 여러 사람들의 손을 탔을 헌 책도 매력적이다. 책장을 몇 번 더 넘기면 찢어질 것 같아서 더욱 조심스럽게 읽었다.

얼마 전엔 러시아 소설을 읽었는데, 이번엔 독일 소설인가. (러시아의 멕베스 부인은 정말 엄청나게 직설적이고 무서울 정도로 강했다.)
이 소설은 동성애를 소재로 하고 있어서 읽어야 할 지 망설였다. 동성애 차별은 싫지만 그렇다고 동성애를 지지하는 것도 아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저자인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가 동성애 성향이었다고 하며, 글을 쓸 당시 나이대도 이 책의 주인공 조지와 비슷했다. 작가 자신의 스토리를 바탕으로 썼겠지. 아무튼 이런 책을 읽게 될 줄은 몰랐다.

이 책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후를 배경으로 한다. 그래서 책 속에는 전쟁에 대한 공포가 시들지 않은 사람들의 모습이 많이 묘사되었다. 시민들이 물품을 사재기해서 방공호에 보관해두었는데, 막상 크리스마스가 되니 살 것이 없거나 살 형편이 되지 않는다는 내용, 미사일 반대 뱃지를 달고 다니는 학생을 보고 조지와 학생이 함께 미사일 반대! 라고 외치는 장면 등등.

이 시대는 게이라는 말이 나오기 이전 시대였고 동성애자(책 내용대로라면 다수에게 피해를 주는, 경멸당하는 소수자들)에게 부정적인 의미인 “퀴어”라는 단어를 썼다고 한다. 그러다 게이라는 긍정의 말로 바꾸어 사용했다. 경멸당하지만 긍정의 마음을 갖겠다는. 그러나 요즘은 게이라는 단어 대신 퀴어라는 단어를 일부러 다시 사용한다고 한다. 굳이 다수에게 애써 긍정적인 이미지를 보일 필요가 없기에.
그런데 나는 게이라는 말이 긍정적인 의미를 갖고 있다는 걸 이제 알았다. 게이라는 단어를 듣고도 아무 생각이 들지않게 된 게 얼마 되지 않았다. 아직 나는 동성애에 대한 편견이 많이 있는 것 같다.

주인공 조지는 60대를 바라보는 나이다. 오랫동안 함께 있다 죽은 그의 애인 짐을 잊지 못하고 둘이 살던 집에서 지낸다. 집에선 힘이 다 빠져서 자신의 몸이 누군지 영혼은 어디에 있는지 정신을 놓고 살아가고 있다. 밖에서는 교수로서의 역할을 다하는데, 조지 자신은 이것을 ‘연기’라고 표현한다. 애인의 죽음에 대한 상실감으로 더이상 살아갈 의미를 잃었고, 밖에서 활동하는 조지는 자신이 아니라고 생각한다. 가짜 조지인 것이다. 짐 없는 인생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그였지만 때로는 자신을 찾아주는 주변 사람들로 인해 기쁨을 느끼기도 한다. 짐의 여자친구이자 자신의 적인 도리스를 죽기 전까지 돌봐주기도 하고, 오랜 친구 샬럿과도 끈끈한 우정을 유지하는 장면에서 인간적인 모습도 느껴졌다.

조지는 캠퍼스에서건 어느 장소에서건 늘 사람을 관찰하는 것을 좋아한다. 나중에 그 모습을 다시 꺼내어 상상하곤 한다. 학생들에게는 휘말리지 않는, 냉정하고 강한 교수로 행동한다. 운전 중에는 잡다한 생각으로 가득하다. 그렇게 생활하면서도 집에 들어오면 또다시 유체이탈을 한다. 그런 일상의 반복이었다. 그러던 그가 어느날 제자 케니를 만나면서 다시 한 번 자신이 살아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힘들면서 웃겼던 건, 사람들의 이름으로 이 사람이 여자인지 남자인지 맞추고 있는 나 자신을 발견했을 때였다. 물론 다른 책에서도 등장인물의 이름들을 헷갈려하곤 하는데, 유독 이 책에서는 포인트가 자꾸 성별로 간다. 소재의 특성 상 그럴 수 밖에 없겠지만. 조지가 마음이 가는 사람이나 더욱 유심히 관찰하는 사람은 무조건 남자다. 그래서 끝까지 그 남녀 남남 이라는 것에 신경쓰면서 읽어야만 했다. 적응 안 돼.

그런데 마지막에서 정말 기가막힌 결말이 났다.
교수로서 학생들에게는 자신의 정체성에 대해 알리지 않던 조지가, 제자 케니를 집에 불러들여 술에 잔뜩 취해서는 중대한 실수를 하고 만다. 욕망에 들끓어 고백을 하게 된 것이다. 조지가 뒤늦게 후회하는 모습에 불쌍하다는 생각을 하고 있을 때는, 살아있는 자신에 대한 욕망을 마음껏 펼치는 내용과, 곧 죽을 것에 대한 조지의 상상 (또는 관찰자의 상상)으로 내용이 마무리된다. 어우 재미있어.

창조의 탄생에서, 크리스토퍼 아이셔우드의 책을 설명하는 부분이다.

책을 다 읽고나서 다시 「창조의 탄생」을 펼쳐 보았다. 분명 아이셔우드 작가를 조금이라도 알고 나서 다시 이 책을 읽으면 뭔가 다른 느낌이 들 거라고 생각했는데, 어디….어딜 보고 그런거지?
므하하하하하하;;;;;;;

아무튼 낯선 책 한 권을 더 읽게 되어 무한 영광이다. 「노리스씨 기차를 갈아타다」도 읽을 책 목록에 추가했다. 에…그리고 끈질긴 야근에도 불구하고 놓지 않고 읽은 「창조의 탄생」은 그냥 처음부터 다시 읽어야겠다. 책도 무리해서 읽지는 말아야겠으나 이 짜증나는 야근의 연속 때문에 독서를 포기했다면 아마 앞으로도 영영 책을 멀리했을지도 모르기에, 스스로를 칭찬하면서 북리뷰를 마무리하겠다!

영화 싱글맨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영화로도 나왔었구나. 순서대로 샬럿, 조지, 케니 인가보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