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여덟단어

박웅현 - 여덟 단어 표지
박웅현 – 여덟 단어

‘생각의 기쁨’, ‘모든 요일의 기록’에는 공통된 인물이 등장한다. 오랫동안 함께 일해 온, 두 작가의 선배이자 팀장이었다. 책의 여러 장면 속에서 울컥울컥, “나도 이런 사람과 같이 일하고 싶다”라는 바람이 생겼다. 그들이 이구동성으로 우리 팀장님, 우리 팀장님 하며 칭송하는 박웅현이라는 사람은 누구일까. 알고 보니 빈폴(그녀의 자전거가 내 마음속으로 들어왔다), SK텔레콤(사람을 향합니다), e 편한 세상(진심이 짓는다) 등, 내로라하는 광고 카피를 만든 장본인이었다. 정체를 알게 되니 더욱 영광스러웠다. 그의 저서 중 하나인 ‘여덟 단어’는, 아주 오래전 어떤 드라마의 실장님 비슷한 존재가 읽던 책으로 잠깐 눈에 들어왔었다. 왜 그런 고급진 이미지가 생겨났는지는 모르겠지만, 어떤 책이든 누군가가 드라마에서 읽는 장면을 보면 이상하게 따라읽고 싶었지. 충동을 억누르며 그렇게 그때가 지나가더니, 제목과 작가의 이름이 선명하게 되새겨지며 다시 이 책과 조우하였다. 결국 읽게 될 책이었나 보다. 카피라이터가 쓴 책을 연달아 두 권 읽은 후, 또다시 카피라이터의 책을 선택하다니 이것은 내가 쟁취한 운명이라 해도 괜찮을 것 같다.

이 책은 삶에서 가장 중요한 여덟 가지 단어 자존, 본질, 고전, 견(見), 현재, 권위, 소통, 인생에 대하여 우리가 대해야 하는 자세에 대해서 강연한 것을 모았다. 각 단어를 시작하기 전에 작가의 글씨가 가득 담긴 수첩을 볼 수 있었는데, 필체까지 멋있어서 반하지 않을 수 없다. 메모의 중요성! 생각나는 순간이나 말의 찰나를 빠른 속도로 낚아채 기록하면 그 속에서 어떤 새로운 아이디어를 발견하기도 한다. 작은 수첩은 가능하면 휴대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데쓰노트나 쓸 것이 아니라.

2017년 연말에 읽는 책들에게서 행운이 찾아오는 것 같다. 읽는 책마다 마음을 움직이는 구절을 계속해서 발견했다. 몇 가지 플래그 잇 포스트를 붙여 놓았던 부분들을 다시 펼쳐 본다.

萬物 皆備於我矣 만물 개비어아의
反身而誠 樂莫大焉 반신이성 낙막대언
만물의 이치가 모두 나에게 갖추어져 있으니,
나를 돌아보고 지금 하는 일에 성의를 다한다면
그 즐거움이 더없이 클 것이다.

맹자의 한 구절이라고 한다. 현실을 대하는 태도에 관한 이야기다. 더 가까이, 혹은 더 멀리, 더 깊이 대하면 (이것이 바로 見 견 의 자세) 아무런 의미가 없던 속에서 다른 것이 보인다는 것이다. 지루함, 사소한 것, 좋지 않은 일 모두 우리에게 주어진 현실인 것이다. 그것을 대하는 나의 태도에 따라 전혀 새로운 모습을 볼 수 있다. 나는 무료함을 일상에서 탈피하는 것으로 채우려 했었다. 여행을 가거나, 사진을 찍거나, 아니면 다른 새로운 것을 하거나. 물론 스스로 만족했으니 된 것이라 생각한다. 하지만 출퇴근 시간, 지하철 안에서, 일을 하다가도 발견할 것들이 많지 않았을까! 나의 관찰력이 나를 더 섬세하고 창의력 있는 인간으로 발전시킬 수 있다는 가르침을 얻었다. 2018년의 하루 하루를 무료하지 않게 보낼 수 있을 것 같은, 강렬한 구절이었다.

“동의되지 않는 권위에 굴복하지 말아라”라는 말도 인상 깊었다. 이 세상 권위주의가 심한 것이 사실이다. 실제로 주변에 엄청 많다. 불현듯 떠오르는 인물들이 있다. 어쩌지? 좀 많다. 김장겸, 조현아, 황교안, 반기문, 김문수. 자연스럽게 눈살이 찌푸려지고 혀를 차는 중이다. 지난 정권의 일당들은 말할 것도 없다. 진정한 권위란, 감투와 의전이 아니라 마음에서 존경심이 절로 생기도록 하는 순도 100%의 프로다운 능력과 인성이다. 동의되지 않은 껍데기 권위에 굴복하는 우리네 관행이 하루빨리 없어졌으면 좋겠다.

아마 이 책을 또 읽게 된다면 그땐 또 다른 구절이 눈에 들어올 것이다. 책에 표시해 둔 부분을 다시 펼쳤을 때, 그때와 지금의 감정이 또 달라졌는지 이 페이지는 왜 표시했을까 하는 부분도 있었다. 책에서 보여준 책과 음악, 영화를 접했다. 영화 시 를 보고 치매 초기의 주인공인 할머니가 쓴 시를 들으며, 죽은 소녀의 마음을 느껴 보았다. 책에서 가장 많이 흥미가 생긴 ‘생각의 탄생’을 읽어보기로 했다. 또 아주 익숙한 재즈나 클래식을 다시 들어볼 수 있었고 제목도 알게 되었다. 책 속에서 또 다른 무언가를 알게 될 때 이렇게 기분이 설레는지 몰랐다. 시간 날 때마다 책을 읽고 ‘나’라는 책장을 만들어가는 나에게 고마워해야지. 그리고 차분하게 나만의 길을 만들어가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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