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촐라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책을 만났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독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인생 소설을 만났다. 이미 오래전부터 매일 매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불평으로 가득한 나에게, 이 책은 삶의 굴곡을 다 겪은 어느 어르신의 가르침같이 느껴졌다. 이제껏 소설은 재미로 읽자던 가벼운 마음은 사라졌다. 조금 다른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배울 점은 무한하다. 에필로그의 한 문단 한 문단을 읽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단지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의 책은 처음이라 살짝 기대를 했을 뿐이었다. 구매를 위한 구매가 몇 개월 동안 계속 되어 책장에 꽂아두기를 몇 년 후, 드디어 책장에서 꺼내어 책 제목부터 검색했다. ‘촐라체’는 히말라야 산맥에 포함되는 네팔의 험한 산 이름이었다. 아…역시 책은 제목을 보고 골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네팔인들은 해발 6천미터의 산은 ‘마운틴’이 아닌 ‘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산 정상이라고 해 봤자 해발 500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산, 힐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동산 정도를 올라왔다 내려오면서도 헉헉거리는 수준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은 등산인들이 읽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산은 인생의 험난한 시련인 동시에 성장의 발돋움이었고, 성장해야만 볼 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었다.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강연이었다.

어떤 도전이든 시작은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힘든 과정이나 안 좋은 결과가 뻔히 보이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출발을 꺼리게 된다. 따라서 시작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감과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위한 여행! 부풀린 자신감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등반의 선배를 믿고 따라가기도 하고, 등반하는 이들을 지키고 이끌 리더가 되기도 한다. 산의 지형이나 날씨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등반 시 필요한 도구 등을 갖추어야 한다.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산을 오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위기는 언제나 찾아온다. 자신감 하나로 시작한 도전에 한 번 터진 사고는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이어 터진다. 이렇게 촐라체에 진입한 순간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상하지 못 한 채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다 크레바스에 빠진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버린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지? 내가 왜,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게 뭐라고 내가 시작을 한 거지? 기대감도 무너질 수 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하는 선택이 나의 앞날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고,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크레바스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생긴다. 문득 떠오르는 탈출 방법.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생긴다.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운명이 아닐까? 탈출구는 어떤 방법일 수도, 스스로 일수도, 타인일 수도 있다. 언제라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는다.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또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그 존재감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빠져 나와 눈 앞에 펼쳐지는 촐라체의 찬란한 풍경…  어둡고 무섭게 나를 삼킬 것 같던 촐라체는 위기를 극복한 순간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면적으로 한단계 성장한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는 상처와 응어리. 이 아팠던 여운을 지렛대 삼아 또 다른 성장의 과정을 밟아본다.

삶의 고민과 상처들이 인생책을 만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금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가 아닐까 생각할 때, 함께 몰려드는 수많은 걱정들, 깊게 빠져드는 생각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책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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