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잠자는 숲

히가시노 게이고 – 잠자는 숲

히가시노 게이고 가가 형사 시리즈 두 번째 이야기. ⌈잠자는 숲⌋.
⌈졸업⌋을 읽고 그 뒷이야기들을 이 책에서 조금은 비춰주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으로 책을 읽기 시작하였다.
몇 군데에서 대학시절의 이야기가 잠시 나오는 것을 보고는, 추리를 하고 있다가도 웃음을 지었다.
특히 사토코의 이야기가 가장 궁금했는데, 이름을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가가의 집으로 대학 시절의 연인이 보낸 편지가 도착하는 장면으로 살짝 등장한다.
졸업과 동시에 헤어졌지만 여전히 사토코는 가가의 안부를 묻고 있다. 그렇다면 언젠가는 또 등장하지 않을까 하고 기대해 본다.
신입 경찰로 다시 나타날 거라 생각했던 가가는 이미 서른 살을 넘긴 형사였고, 중년 형사와 오타와 함께 사건을 차분하게 해결한다.
경력이 오래되지 않았는데도 가가만의 판단력으로 신중하고 차분하게 사건을 파헤치고 있었다. 역시 상형사.ㅋㅋㅋ

책 겉표지에 이렇게 쓰여있다.
화려한 발레 무대 뒤에 얼룩진 눈물과 한숨, 그리고 한 남자의 헌신적 사랑.
이 단어들을 보고 생각했다. 이 단어들이 수수께끼의 힌트일 것이라고.
무엇보다 정말 뜻밖이라 생각했던 부분은 바로, 한 남자의 헌신적 사랑이라는 것이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소설들을 읽었을 때와는 사뭇 다른 기분이 들었다. 이것이 이 작품의 매력 포인트가 아닐까 한다.

사건 해결 과정에서 굉장히 흥미로운 점이 있다. 올 초 드라마 시그널을 보면서, 옛날의 수사 기법으론 사건의 범인을 잡기가 너무 어려웠다는 걸 새삼 느꼈는데, 잠자는 숲에서도 같은 생각을 했다. 이 작품은 1989년 작품으로, 이 당시 수사 기법으로는 이렇게 하나씩 하나씩 단서를 찾아 사건의 실마리를 풀어나갈 수밖에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였다. ⌈잠자는 숲⌋에서는 이야기의 시작부터 낯선 남자가 발레단으로 몰래 들어왔다가 꽃병에 머리를 맞고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고, 범인 하루코는 정당방위로 꽃병을 내리쳤고 기억을 잃었다고 자백한다. 그런데 이 이야기를 그대로 믿을 수만은 없다. 너무 초반부터 내가 범인이오!라고 나와주시니, 곧이곧대로 받아들일 수 없는 건 당연하다.
그래서 독자인 나는 형사들과 함께 사건을 풀어나갔다. 이 사람도 의심해 보았다가, 저 사람도 의심해 본다. 그러나 발레단과 낯선 남자의 관계가 전혀 없기 때문에 사건 해결은 점점 미궁 속으로 빠지게 된다. 그러는 와중에 또 한 사람이 살해되고, 형사들은 수사에 난항을 겪는다. 처음부터 끝까지 스토리의 추측으로 이어진다. 너무나 답답하면서도 추리해가는 과정이 궁금하고 신기하다. 또한 수사 기법이 발달하지 않았던 그 당시에는 그럴 수밖에 없었을 거라 생각했다. 지금은 DNA 만 검사해도 범인을 밝힐 수 있는 시대이니, 이렇게 길게 이야기를 풀어나갈 수 있을까도 궁금하다. (음, 그런데 문득 요즘도.. 해결하는 데 매우 긴 시간이 걸리는 사건 사고들이 굉장히 많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중견 형사들이 예상하지 못하는 것도 가가 교이치로는 생각해 낸다. 가가는 뼛속까지 경찰이로구나. 하고 감탄할 때 항상 빠지지 않는 사람이 있다. 바로 그의 아버지. 다음 책에서는 또 어떤 역할을 할지 기대된다.

디즈니의 잠자는 숲 속의 미녀 라는 이야기를 굉장히 좋아했는데, 이 작품에서 백조의 호수와 함께 잠자는 숲속의 미녀 발레 공연이 소재로 쓰였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작가의 관찰력이란 정말 대단하다. 게다가 다른 소설보다 왠지 이야기가 좀 더 복잡하고, 잠자는 숲의 가시덩굴처럼 엉켜있다고 느꼈다. 이 모든 단서들이 어떻게 이렇게 잘 엮여 있는지, 너무나 신기할 뿐이다.

발레 공연을 두 번 정도 본 것 같은데, ‘예쁘다’, ‘댄서들이 너무 날씬하구나’, ‘나도 스트레칭과 운동을 많이 해야겠구나…’ 이런 기억만이 남았다. 그런데 잠자는 숲을 읽고 나서는 발레에 대한 정보를 사실적으로 표현하거나, 발레 용어나 동작 설명 등으로 조금 더 깊이 있게 다가선 듯하다. 발레 공연 관람 당시의 장면들을 다시 떠올리며, 발레리나의 꿈을 위해 혼신을 다 해 준비하는 댄서들의 고충도 생각해 보게 되었다.
책 내용에 따르면, 발레의 세계만큼 폐쇄적인 공간이 없다고 한다. 가녀린 몸매 관리를 위해 심각하게 다이어트를 하는 댄서들이 많고, 발레 연습을 하루라도 놓지 않으면 세계 최고의 발레리나의 꿈을 이루기 힘들기 때문에 자신의 몸을 혹사시키는 모습, 발레 선생님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애쓰는 모습, 잠자는 숲 안에서 다들 무대 바깥세상을 보지 못한 채 발레만을 위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는 모습들이 너무 안타까웠다. 특히 미오의 가녀림과 연약한 모습, 야구 경기 한 번 제대로 해 본 적 없을 정도로 세상과는 단절된 모습에 가가 교이치로는 측은함을 느낌과 동시에 남자로서 빠져들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더 이상 무언가를 이야기하면 스포가 될 것이기에, 오늘의 북리뷰는 여기서 끝을 맺도록 한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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