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상냥한 폭력의 시대

인생은 낯선 경험의 연속이다. 사회 활동을 하는 인간의 인생은 결코 마음먹은 것처럼 단순할 수 없다. 소소하게 행복하다며 자기 최면을 걸지만, 똑같은 일들이 매일 반복된다며 무료해하고 마음 한켠에는 상처들로 인해 묘한 기분들이 채워지기도 한다. 상처를 극복하려는 방법은 여러 가지다. 사람에 따라 자기 자신만을 보호하기도 하고, 머릿속이 하얘지기도, 어찌할 바를 몰라 안절부절 하기도 한다. 애써 쿨하고 무덤덤한 척도 한다. 불행은 행복보다 더 강하게 다가오고, 해결책은 존재하지 않는다. 그럼 그 응어리를 고스란히 안고 살다가 이후에 또다른 불행을 맞이하기도 한다. 힘든 순간을 몇 번이나 접하고 그 상처를 치유하지 않아도, 별 수 없이 ‘또 살아지더라’라고 느낀 적이 있지는 않는가. 인생은 그렇게 복잡한 경험과 생각이 쌓이고 쌓여서 완성되어 간다.

예의 바른 악수를 위해 손을 잡았다 놓으면 손바닥이 칼날에 슥 베여 있다.
상처의 모양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누구든 자신의 칼을 생각하게 된다.

딱히 죽을 만큼 힘든 건 아니지만 어딘가 모르게 상처투성이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다고 느껴본 적이 있는가. 잊고 살다가도 문득 떠오르는 상처의 흔적. 인생에서 몇 번은 그런 흔적들을 갖고 있는 듯하다. 정 없는 삭막한 도시 생활. 영혼 없는 웃음을 주고받는 관계. 지금까지 마음을 터놓고 진심을 얘기했던 사람이 얼마나 될까? 지금까지 함께 해 온 사람들과 웃고 지내왔다면, 그건 정말 마음속에서 우러나오는 웃음이었을까? 우리는 얼마나 개인주의이고, 얼마나 속물인가. 얼마나 파란만장한 인생을 살아왔는가.

정이현 – 상냥한 폭력의 시대. 이렇게 삭막하고 우울해보일수가. 이번에도 오은수의 회색 느낌이다.

서점에서 술술 읽을만한 책이 있을까 둘러보다가, ‘도시기록자 정이현’이라 쓰여있는 띠지를 발견했다. 드라마로도 만들어졌던 「달콤한 나의 도시」가 생각났다. 최강희가 나왔던 그 드라마, 최고의 드라마였지. 이번에도 도시 이야기인가 보구나.

「상냥한 폭력의 시대」의 겉표지는 정말 특이하게 눈에 띄었다. 바랜 듯한 컬러는 새 책인데도 중고서적처럼 보였다. 오래돼 보이는 건물, 미세먼지 가득해 보이는 하늘, 텅 비어있는 아파트에 화분 한 개가 덩그러니 놓여 있는 모습은 결코 평화로워 보이지 않았다. 쓸쓸하고 메마른 현실에 대한 내용일 거라 생각했지만 달콤한 나의 도시를 술술 읽었던 기억이 나서 집어 들게 되었다. 역시 이번에도 금방 읽었다.

이 책에는 여섯 개의 단편소설이 있다. 미쓰조와 거북이와 나 / 아무것도 아닌 것 / 우리 안의 천사 / 영영, 여름 / 밤의 대관람차 / 서랍 속의 집 / 안나 내용이 어렵지 않아서 쉽게 읽었지만 각 단편의 결말이 하나같이 씁쓸했다. 각자가 가지고 있던 상처들은 해결되지 않은 채 다음 시간을 맞이하고 있다. 후련했다거나 비극이었다거나, 그런 느낌은 전혀 없었다. 오히려 더욱 막막해지는 결말이었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이런 결말은 우리 실제 인생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 어느 누가 시원하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 아마 없을 것이다. 소설을 읽으면서 희한하게 인생 고민을 해 보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 이것 저것 질문을 해 보았다. 소설임에도 불구하고, 나의 이야기 또는 옆집 아주머니 이야기, 회사 동료 이야기라고 착각할 정도로 구체적이고 현실적이었기 때문이다.

또 어떤 것들이 앞에 놓여 있을지 가늠되지 않아도
숨을 한번 고르고
먼 길을 다시 간다

그래도 살아간다. 일드 제목이 생각났는데, 작가는 이렇게 이야기하였다. 아파왔더라도 “다음”은 있기에, 가깝거나 먼 미래에 대해 조금은 기대해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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