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은수저

심심해서 도서관에 갔다. 동네 작은 도서관이라 책이 그렇게 많지 않았다. 아무 책이나 꺼내 보았다. 제목이 짧아서 낯이 익나, 학교 다닐 때 들어본 것인가? 게다가 양윤옥님 옮김이라니,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들을 번역한 번역가가 아니던가. 한번 읽어보기로 한다.

굉장히 오래 된 책이었다. 우연히 고전을 읽게 된 것이다. 나카 간스케 라는 작가는 본래 시인이었는데, 시인의 감성과 문체로 소설을 쓴 것이라 한다. 그래서 몹시 졸렸다. 오후 3시…때도 한참 잠이 쏟아질 때였다. 책을 읽고 갈 생각도 없었기 때문에, 자리에 앉자마자 졸음이 밀려왔다. 그래서 한시간 정도 버티다 책을 빌려서 나왔다.

난 원래 앉아서 책을 잘 못 읽는다. 앉아 있으면 잠이 오기에, 보통 서서 읽는다. 그래서 지하철이 주된 독서 장소다. 은수저도 장소를 옮겨 다시 읽기 시작하는데, 전혀 새로운 책을 보는 느낌이었다. 이렇게 아름답고 옛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어린 시절로 돌아가는 것 같은, 혹은 부모님의 어린 시절 이야기를 듣는 것 같은, 이 책은, 무어지??

소설의 주인공은 어머니가 보관해 둔 약수저를 보고 어렸을 때를 회상한다. 전반부에서는 몸이 너무나 허약한 유아기의 주인공이, 후반부에는 시간이 지나 많이 성장하고 건강해진 주인공이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주인공의 분위기는 성장하면서 완전히 달라진다. 지나칠 정도로 병약한 어린 시절. 병으로 외출을 거의 하지 않은 주인공은 사람들을 대면하는 것도 무서워했다. 그러다 처음으로 본인과 비슷한 아픈 여자 아이를 만나 둘도 없는 친구가 되기도 했다. 동네 거지 아저씨를 만나기도 했고, 스님을 만나기도 했다. 건강해지면서 뭐든 1등을 하기도 했고, 친구와 싸우기도 했고, 이런 저런 놀이를 하기도 했다.

주인공은 후반부까지 여러 에피소드를 이야기한다. 그 장면과 행동 묘사 하나 하나가 너무나 섬세해서 그냥 나도 그 시절의 그 옆에 있는 것 같았다. 부끄러움이 많았던 어린 시절이 자꾸만 생각났다. 나는 이랬었는데, 하며. 부모님이 보신다면 그분들 또한 그 시절의 어린이가 되실 것이다. 특히 아버지가 생각났다. 아버지의 빡빡머리 어린 시절 사진을 보며, 이 소년이 이런 모습이 아니었을까 했다. 아버지가 어린 시절을 회상하며 글을 쓰신다면 아마도 이런 추억들이 쏟아질 듯하다.

어린 시절 교과서에 등장하는 철수와 영희를 보는 것 같았다. 문장이 너무 곱고 아름다웠다. 정밀묘사같은 책을 알게 되어서 정말 기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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