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 시크하다

간만에 북리뷰.

언어 천재라고 불리는 조승연 님의 책을 처음 접해 보았다. 이것이 웬 횡재냐. 저자 강연 초대권이 들어있다는 문자를 받고 당장 앱으로 접속한다. 방송을 보면 조승연 작가가 말을 너무 잘 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게 이 책을 구매하게 된 단 하나의 이유다. 책을 읽어보니 책 역시 눈에 쏙쏙 읽혔다. 이것은 일석이조? 가볍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들려주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성향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 내가 이 나라에 살면서 겪는 답답한 일들, 도망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프랑스 사람들이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석삼조?

작가는 10여 년을 미국에서, 6년 정도를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프랑스에 대한 느낌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함께 지낸 프랑스인들을 관찰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정리해주는 내용이었다. 물론 경험담이기 때문에 작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쓴 책이라고 강연 서두에서 이야기했다.

프랑스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남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나’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가장 우선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배우는 것부터가 달랐다. 우리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내용을 배운다. 가족 관계, 남녀 관계, 회사 동료와 상사와의 관계, 친구 관계, 부부 관계와 그의 가족들과의 관계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들을 배려하고 신경 쓰며 지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훌륭함의 기준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게 훌륭한 거였다.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다니는 게 훌륭한 것이고, 남들 부러워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게 행복한 거였다.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지 않는 것, 아이를 하나만 낳는 것, 내 집이 없는 것, 집 평수가 작은 것, 이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대부분이 남과의 비교 거리고 오지랖 거리다. 이곳은 나를 챙길 시간이 부족하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행복한지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애초에 이런 교육은 받지 않았다. 좀 더 아름답게, 인생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았다.

행복이란 뭘까?

내가 가진 나만의 주관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내 기준에서의 행복. 세상의 순리를 따라 살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야 하는 건지 고민할 때가 있다. ‘이미 남들의 오지랖에 못 이겨 이만큼 살아온 나’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려고 하는 나’사이의 딜레마. 살아온 만큼의 시간에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생각하고 사랑해왔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신경 쓰일 때도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온전하게 내 기준이었을까. 앞으로도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느껴져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얼마나 주체적인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난 생각보다 꽤 나 자신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라 우길 것이다. 비록 현실과 이상의 혼란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 안에서 나는 또 나를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는 발랄한 노래가 있어서 적어 본다.

옥상달빛 – 가장 쉬운 이야기

어느 날, 너는 내게 말했어. “행복이란 뭘까?” 음 행복이란 뭘까. 모두들 나에게 말했어. 이 다음에 돈 벌면, 이 다음에 성공하면 그땐 행복할 거라고.

그럼 지금 우리에겐 행복이란 없는 걸까?

그래 그건 참 바보 같아 우린 지금이 행복한 순간인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어느 날, 너는 내게 말했어. “행복이란 뭘까?” 음 행복이란 뭘까. 모두들 나에게 말했어. 사는 게 너무 바빠 하늘 볼 여유조차 없다고, 가끔은 행복하고 싶다고.

그럼 지금 우리에겐 행복이란 없는 걸까?

그래 그건 참 바보 같아 우린 지금이 행복한 순간인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그래 그건 바보같아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아, 행복해요 –

책장# 촐라체

소설을 읽으면서 ‘인생책을 만났다’고 느낀 적이 몇 번이나 있을까? 독서를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드디어 인생 소설을 만났다. 이미 오래전부터 매일 매일 계속되는 야근으로 몸과 마음이 지칠대로 지쳐 불평으로 가득한 나에게, 이 책은 삶의 굴곡을 다 겪은 어느 어르신의 가르침같이 느껴졌다. 이제껏 소설은 재미로 읽자던 가벼운 마음은 사라졌다. 조금 다른 세상을 경험했기 때문이다. 소설에서도 배울 점은 무한하다. 에필로그의 한 문단 한 문단을 읽으며 눈물이 멈추지 않았다.

처음엔 책의 제목이 무슨 뜻인지도 몰랐다. 단지 유명한 소설가 박범신의 책은 처음이라 살짝 기대를 했을 뿐이었다. 구매를 위한 구매가 몇 개월 동안 계속 되어 책장에 꽂아두기를 몇 년 후, 드디어 책장에서 꺼내어 책 제목부터 검색했다. ‘촐라체’는 히말라야 산맥에 포함되는 네팔의 험한 산 이름이었다. 아…역시 책은 제목을 보고 골라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네팔인들은 해발 6천미터의 산은 ‘마운틴’이 아닌 ‘힐’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나는 산 정상이라고 해 봤자 해발 500미터도 되지 않는 작은 산, 힐이라 부르기도 민망한 동산 정도를 올라왔다 내려오는 수준이다. 그런 내가 이 책을 흥미있게 읽을 수 있을까. 하지만 이 책은 등산인들이 읽는 책이 아니었다. 이 책에서 산은 인생의 험난한 시련인 동시에 성장의 발돋움이었고, 성장해야만 볼 수 있는 내면의 아름다움이었다. 이 책은 나를 돌아보게 하는 강연이었다.

어떤 도전이든 시작은 기대감으로 가득하다. 힘든 과정이나 안 좋은 결과가 뻔히 보이면 상처받을 것이 두려워 출발을 꺼리게 된다. 따라서 시작을 한다는 것의 의미는 자신감과 가능성이 전제되어 있다는 것이다. 자 이제 시작이야! 내 꿈을 위한 여행! 부풀린 자신감으로 베이스캠프에서 몸과 마음의 준비를 마친다. 등반의 선배를 믿고 따라가기도 하고, 등반하는 이들을 지키고 이끌 리더가 되기도 한다. 산의 지형이나 날씨를 꿰뚫고 있어야 하며, 등반 시 필요한 도구 등을 갖추어야 한다. 준비가 되었다면, 이제 산을 오른다.

하지만 모든 일이 순탄하게 흘러가지는 않는다. 위기는 언제나 찾아온다. 자신감 하나로 시작한 도전에 한 번 터진 사고는 절대 한 번으로 끝나지 않는다. 연이어 터진다. 이렇게 촐라체에 진입한 순간이다. 앞으로 어떤 일이 일어날 지 예상하지 못 한 채 무작정 앞으로 나아가다 크레바스에 빠진다. 아, 나는 이제 어떻게 하지? 이런 절망의 나락으로 빠져 버린 내가 앞으로 뭘 할 수 있지? 내가 왜, 무슨 부귀 영화를 누리겠다고. 이게 뭐라고 내가 시작을 한 거지? 기대감도 무너질 수 있고 성공적으로 마무리될 가능성은 상상도 할 수 없이 어둠 속으로 빨려 들어간다. 이런 상황에서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내가 하는 선택이 나의 앞날을 쥐고 흔들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담이 더욱 커지게 되고, 포기하기 직전까지 갔을 때.

이 위험하기 짝이 없는 크레바스 속에서 빠져나갈 방법이 생긴다. 문득 떠오르는 탈출 방법. 위기를 극복할 방법이 생긴다. 탈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운명이 아닐까? 탈출구는 어떤 방법일 수도, 스스로 일수도, 타인일 수도 있다. 언제라도 나를 도와줄 사람은 반드시 있다는 걸 그제서야 깨닫는다. 일상 속에서 아무렇지도 않게 함께 또는 각자의 길을 걷고 있었기에 그 존재감을 몰랐을 뿐이다. 그리고 절망 속에서 빠져 나와 눈 앞에 펼쳐지는 촐라체의 찬란한 풍경…  어둡고 무섭게 나를 삼킬 것 같던 촐라체는 위기를 극복한 순간 너무나도 아름답게 보이는 것이다. 어쩌면 이건 내면적으로 한단계 성장한 ‘나 자신’의 모습일지도 모르겠다.

그럼에도 남는 상처와 응어리. 이 아팠던 여운을 지렛대 삼아 또 다른 성장의 과정을 밟아본다.

삶의 고민과 상처들이 인생책을 만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가 된다. 지금이 인생의 가장 큰 고비가 아닐까 생각할 때, 함께 몰려드는 수많은 걱정들, 깊게 빠져드는 생각들. 그리고 그럴 때일수록, 책 읽기를 멈추지 않을 것이다.

책장#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책
빈곤했던 여름이 지나고

올해 초 너무나 책이 읽고싶었는데 도저히 시간이 나지 않았다. 벌여놓은 일을 당해내느라 책과는 멀어질 수밖에 없는 상황. 그래서 난 책을 읽는 대신 한 권 두 권 계속해서 구매하고 책장에 꽂아두기 시작했다. 그래서 이 책도, 언제 어디서 구매했는지 기억이 나진 않는다. 그런데 무려 싸인까지 되어 있다.

조용한 기타 연주곡, 피아노 연주곡을 이어 들으며 출근길에 읽었는데, 몇 시간 되지 않아서 다 읽었다. 시인 태재의 첫번째 산문이라 하는데, 산문인지 시인지 모르게 감미롭고 오글오글한 문장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런데 그 오글거림이 결코 나쁜 건 아니었다고 말하고 싶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거나, 혹은 아무 생각 없이 멍하니 있을 때 문득 떠올릴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와 따뜻한 장면들, 추억들이 이상하게 공감이 갔던 책이었다.

덕분에 머릿 속이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웃음 짓고 누군가를 생각해보며 하나의 시를 짓는 기분으로 여유를 가질 수 있었다. 세상이 꼭 그렇게 각박하지만은 않을 것이다. 언젠가는 이 빈곤한 여름이 지나고, 다행인 계절이 돌아올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