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끝마을, 왓카나이

지금 나는 어디?
아래로는 오타루와 삿포로가, 바다 위로는 러시아 사할린 땅이 펼쳐지는 경계선에 뾰족하게 튀어나온 일본의 땅끝마을이 있다. 내가 지구본 위에 서 있다면 이 정도 설명 만으로도 나를 찾기 쉬울 것이다. 원래 우리는 입버릇처럼 블라디보스토크를 이야기했었다. 제주도 갈 때 배를 타고 블라디보스토크를 경유하자는 아무 말 잔치를 몇 년째 해 왔기 때문이었다. 그런데 지도를 보다 보니 바로 옆 일본의 북쪽 끝부분이 눈에 들어왔다. 지금까지 한 번도 갈 생각을 하지 않았던 곳인데 이상했다. 지도를 확대해 보았을 때 나는 ‘왓카나이’라는 지명을 처음 알게 되었고, 우리가 블라디보스토크를 가서 뭘 할 거냐며 친구에게 여행지를 바꾸자고 이야기했다. 친구는 흔쾌히 오케이를 외치며 나에게 언어를 맡겼고 본인은 운전을 담당하겠다고 했다. 오, 나야 땡큐지! 그렇게 우리들은 왓카나이에 가기로 했다.

왓카나이는 그야말로 대자연이었다. 눈앞에 온통 녹색이어서 마지막날 정도 됐을 때 친구는 “이제 녹색좀 그만 보고싶다” 고 말했다. 나는 5년이고 50년이고 대자연과 함께 하고 싶어졌는데. 아직도 생각나고 또 생각난다. 그립다.

우리가 이틀을 묵었던 숙소는 바다 바로 앞에 위치한 게스트하우스였다. 창문을 열어 놓으면 시원한(추운) 바다 바람이 들어왔다. 흩날리는 커튼, 잔잔한 파도소리에 여행 느낌이 물씬 풍겼다. 첫날 새벽부터 피곤하게 움직인 탓에 친구는 금방 지쳐서 말이 없어졌다. 잠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소야곶(소야노미사키) 투어. 날이 추워서 반팔에 반바지를 입고 나갔다가 숙소로 다시 들어왔다. 긴팔로 갈아입고 소야노미사키 구경을 하던 우리는 대관령과 비슷한 느낌을 받기도 했다. 그러나 사슴 소리가 들리고 나서 이곳은 분명 왓카나이라고 생각되었다.

 

나는 이런 풍경에서 느껴지는 아날로그함이 너무 좋다.

 

 

이곳은 コーヒーショップ라고 할 것이 거의 보이지 않을 정도로 시골 동네였다. 그러다 발견한 동네 커피가게. 중년 신사분이 오랫동안 이 자리에서 喫茶店을 하신 듯했다. 운치있는 실내.

 

어딜 가도 이런 풍경이 계속해서 쏟아져 나왔다.

 

사할린은 눈앞에 있다고 상상만 하도록 하자. 정작 결항된 다음날은 날이 좋아서 정말 러시아 땅을 볼 수 있었다.

 

아침 안개가 자욱해 앞이 보이지 않았던 소야노미사키. (비행기가 결항된 덕분에 좋은 날씨도 구경할 수 있었다.)
함께 여행한 친구. 항상 고마운 우리 옹느경.

 

 

여행, 도쿄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하나도 몰랐을 때 친구를 만나러 도쿄에 갔었다. 낯선 도시를 거닐던, 붉은 건물과 눈 쌓인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케이크를 사서 신나게 송년 파티를 했던,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시끄럽게 놀았던 일 등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곳이 나의 첫 번째 일본 여행지 도쿄였다. 몇 년 후 다시 그 친구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했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강을 따라 내려가며 다리마다 설명을 들었던 일, 디즈니씨에 가서 놀이기구 하나를 반복적으로 타며 또 한 번 성가시게 다녀본 일, 오사카로 가는 신칸센을 타고 가며 오벤또를 사 먹었던 일. 그 후로 나는 도쿄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 다시 도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알게 된 뒤로 도쿄는 처음이었다. 눈에 글자가 보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봐 왔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쿄를 멀리했던 건 어쩌면 내 시야가 좁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현상 맡긴 사진을 찾아와 보니, 사진들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다 일 거라는 어떤 그런 편견은, 이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십일월, 서촌

5년만에 만난 친구와 서촌에 다녀왔다. 육아로 지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다. 서촌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 좋은 곳이었다. 20년지기 친구를 만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늑한 곳곳의 분위기는 친구의 육아 스트레스와 나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주 적당했다.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했다.

아트북 서점. 몇 권 지를 뻔 했다.
테이블.
푸른 양귀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카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록도 박물관. 고통스러웠던 소록도의 키워드들.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
잡생각은 버릴 수 있도록. 텅 빈 벽에 조명만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