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리가 있으면 앞을 보자

최근 몇 달 동안 제시간에 퇴근해 본 적이 몇 번이나 있었던가. 퇴근 후 동네에 오면 버스가 끊기기 일쑤였고, 밤 열한 시가 넘어 체감 시속 150km로 질주하는 택시에 몸을 맡기노라면 한 번 탈 때마다 수명이 10개월은 줄어드는 기분이었다. 지난달에는 무려 일곱 번 택시를 탔더라. 더 슬픈 건 그 공포 또한 무뎌지고 있었다는 것이다. 총알택시를 타는 것도 익숙해지니 습관처럼 타는 것 같았다.(오늘도 나는 총알택시를 타고 가면서 글을 쓰고 있다.) 그렇게 길고 긴 줄줄이 야근을 하고 5개월이 지났다. 그리고 오늘 나는 멘탈이 나가버렸다.

그럼 지난 5개월간의 이야기를 요약해 보겠다.

디자인 팀장 자리를 뺏기고 기획 팀장으로 가게 된 사람이 각종 방법으로 새로 온 디자인 팀장을 경계하고 못 살게 굴었다. 참다못한 디자인 팀장이 유관부서 전부 참조해서 장문의 메일을 보냈다. 왜 협의를 하자는데도 계속해서 이유 없이 디자인을 못 하게 하냐는 내용이었다. 기획팀장이 돌변하여 꼬리를 내렸다. 갑자기 문제의 팀장들이 극적으로 화해를 한다. 그러면서 디자인 팀장이 가장 밀고 있던 프로젝트를 진행하지 않기로 했다. 그걸 하지 않는 대신, 몇 달에 걸친 고래 싸움의 소재가 되었던 타이틀 옆 화살표를 넣을 수 있게 되었다.

아, 창피하고 우스운 모양새. 본인 스스로도 부끄러워 그런지 당당하게 얼굴 펴고는 못 다니는 듯했다.

진행하지 않기로 한 프로젝트의 디자인 담당자는 공교롭게도 나였다. 내가 몇 개월 동안 해 왔던 일은 아예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싸우는 팀장들 사이에서 협업이 아예 불가능했지만 꾸역꾸역 야근까지 해 가면서 디자인을 완성했다. 그걸 아예 없던 일로 해 버렸다. 처음엔 오히려 후련하다 생각했다. 애초부터 협의를 제대로 하지 않은 서비스를 론칭하려고 시도한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으니 말이다. 그런데 찜찜하다. 작업하면서도 찜찜했던 것이 어그러졌는데도 찜찜하다. 내 등이 가장 많이 터진 것 같다.

5개월. 거의 반 년이다. 디자이너로서도, 사람으로서도 정말 소중한 시간이 아닐 수 없다. 뭘 만들었어도 벌써 만들었을 것이다. 나는 뭘 한 걸까? 야근이라도 안 했다면, 주말에 회사 일을 하지 않았다면, 다른 프로젝트를 담당했다면, 전 팀장에게 배척을 당한다고 생각하기 전에 그만두었다면, 난 지금 무얼 하고 있을까? 기나긴 시간은 나에게 무슨 의미였을까. 인내를 위한 인내였던 건가. 굳이 일어나지 않아도 될 일이 일어나는 것을 나는 왜 그토록 참고 참고 또 참으며 지켜본 것일까.

고통이란 성공을 위해 겪어야 하는 과정이라고들 한다. 하지만 고통을 받은 이후 크게 얻거나 깨닫는 경우가 있는 반면 어느 것 하나 얻을 게 없는 경우가 있다. 후자 중에 하나가 바로 지금 내 상황이라 생각한다. 겪지 않아도 되는 고통, 내 의지로 절대 변화시킬 수 없는 고통, 도저히 배울 것이 없는 고통.

나를 위해서라면, 진작에 끊어버렸어야 했다.

이제 내가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졌다. 이제부터 할 일 중 가장 중요한 일은, 정신을 차리는 일이다. 피폐해진 정신을 되돌리기 위해 휴식을 취하고, 시간을 갖는다. 그러기를 3주가 지났다. 이제 다시 원래의 나를 찾을 것이다. 정신 살리기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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