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최악의 하루

비가 세차게 퍼붓는 주말. 전날 새벽까지 영화를 보다가 그대로 거실에서 잠들었다. 덥고 습한 기운은 몸을 찌뿌드드하게 만들기에 늦은 아침 눈만 떠 졌지 일어나기도 앉아있기도 귀찮은 어떤 그런 날이었다. 오늘은 프레이머 코드를 짜 보겠노라고 다짐해 놓고도, 방으로 들어가는 앉는 것 조차 귀찮았다. 한 뼘이라도 움직일 때의 끈적끈적한 느낌은 4계절 중 가장 싫어하는 느낌이다. 이대로 누워서 할 것을 찾았다. 드라마도 아닌, 영화 몰아보기. 그동안 못 봤던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어제 보다 중간쯤 부터 잠이 들어 못 다 본 영화를 끝내고, 다음으로 재생을 시작한 영화 ‘최악의 하루’.

무슨 내용인지도 몰랐고 요즘 계속되는 내 최악의 하루와 딱 들어맞는 타이틀이었기에 선택한 것이었다. 얼마전 50편짜리 육룡이 나르샤 몰아보기를 꾸역꾸역 하면서 척사광에게 매료되었는데 그 척사광 한예리가 주인공이었다. 남주는 이와세 료 라는 일본배우. 영화는 일본어 나레이션으로 시작한다. 그래서인지 첫인상이 괜찮았다. 잔잔한 독립영화 스타일이 마음에 들어 검색을 하기 시작, 순간 적잖이 놀랐다. ‘더 테이블’의 감독 작품이었다 오오오 좋네. 작품이 많아서 나의 주말이 조금 더 즐거울 듯.

최악의 하루 포스터. 출처 : 네이버 영화

무명 작가 료헤이가 우연히 은희에게 길을 물어보면서 두 사람의 하루가 시작된다. 료헤이는 한국에서 처음으로 번역 소설을 냈지만 알아주는 이 없었고 그나마 만난, 일본어좀 할 줄 아는 독자에게 언어로서 공격당했다(고 나는 느꼈다) 은희는 연애시절 깨끗하게 마무리되지 않은 만남이 질척질척 이어져 최악중의 최악의 상황을 경험한다. 지치고 꼬이고, 뭐 이런 날이 다 있을까.

그러다 둘은 남산에서 다시 우연히 마주친다. 은희는 이 낯선 경험이 오히려 편안했을 것이고, 료헤이는 낯선 나라에서 은희가 반갑고 의지됐을 것이다. 해가 진 산책로를 걸으며 자연스레 위안을 얻고 있는 두 사람의 뒷모습이 너무나 아름다웠다. 료헤이는 일본의 고시를 읊었고, 은희는 춤을 추었다. 료헤이는 은희에게 아름다운 다음 소설의 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했다. 아, 마음이 어찌나 편안해지던지.

말도 통하지 않고 나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지만, 때로는 그런 사람에게 또는 그런 장소에서 아무런 신경 쓸 필요도 없이 아무 말이나 꺼내는 게 스스로에게 무척 긍정적인 효과를 준다. 돌아보면 조금 낯선 경험들. 여행, 사람들과의 만남, 책, 새로운 것들에 호기심과 흥미가 생기면서 머릿속에 담아두었던 힘겨운 생각들은 씻겨나갔다.

또는 나에게 도저히 해결 불가능하다고 생각할 만큼 비현실적인 일이 일어났을 때, 내가 의지할 수 있고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은 반드시 한 명 이상 있다는 점도 항상 머릿속에 새겨 두기로 했다. 길은 항상 열려 있고, 내가 걸어가는 곳이 내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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