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 프로젝트를 하자

나는 지금 회사의 업무 프로세스가 효율적으로 돌아가기 위한 방법으로, 전반적인 장비 교체라는 카드를 꺼내들고 있다. 스케치를 사용하는 기업이 점차 늘어나고 있음에도 이 곳은 지금도 엑셀로 플로우를 짜고, 포토샵으로 UI 그리드를 잡고, html로 목업을 만들고, 파워포인트로 가이드를 치는 업무 프로세스를 고수하고 있다. 추구하는 서비스의 방향은 너무나도 미래 지향적인데, 정작 그 서비스를 만드는 과정과 수단은 과거에 머물러 있다.

일정 또한 모순이다. 디테일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은 주지 않는다. 자사 서비스를 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에이전시 못지 않은 빡빡한 일정을 소화하고 있다. 뇌에서 신호를 보내면 그 즉시 그림이 그려지는, 어떤 최첨단의 디자인 시스템을 기대하는 듯하다. 야근은 기본이고, ppt로 가이드를 배포하기 전에 apk가 먼저 나오기도 한다. ppt로 그림을 그리는 시간이 무의미해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apk를 가지고 상부에 보고할 때 목업으로 사용한다. 설마 이것이 다름아닌 ‘애자일’?

작년 겨울, 몇 명의 인원이 모여 스터디를 했다. 스케치 강의를 들은 후 실습 차원에서 써 보기로 한 것이다. 개발자 2명 / 디자이너1명 /  DB1명 / PD 1명으로 멤버를 구성했다. 인비전, 제플린, 링고 등을 사용했고 슬랙으로 커뮤니케이션을 하고, 앱 유입 분석 툴을 새로 알게 되었다. 론칭은 하지 못 했지만 ‘스터디’로서의 목적은 달성했다. 프로젝트를 완성해 가며 신세계를 경험했고, 그동안 회사에서 작업 시간이 얼마나 비효율적으로 돌아갔는지 절실하게 느꼈다. 그 뒤에 다녀온 프로토파이 워크샵을 통해서도 같은 느낌이 들었다. 동료들에게도 명확하게 설명하고 싶어졌다. 그래서 전파를 시작하고, 밋업 정보를 공유하고 함께 다녀오기도 하며 공감대를 만들어 갔다.

하지만 윗선에서 내 말이 쉽게 받아들여질 리가 없다. ‘기업’이란 장애물이 이런 것이다. 뜬금없는 장비교체 요청에 당황할 것이다. 지원해달라 요청하면 반응은 대략 이러하다.

툴 뭐 여러 개 있구요, 저도 좀 써 봤는데, 별로더라구요.
아니 그거 쓰다가 없어지면 어쩌려구요?
새로 도입하면 싫어하는 사람 분명히 있어요. 누가 교육 할 건데요?
회사가 직원을 100%만족시켜줄 수는 없는 거예요.
회사에 갑자기 그렇게 크게 지원해 줄 돈이 없어요.
외주 쓰면 되잖아요?

물론 이해도 한다. 지금도 충분히 일이 잘 돌아가는데, 왜 굳이 비싼 돈을 들여 맥을 사 줘야 하고 툴을  사 줘야 하는지 납득할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그건 알아야 하지 않을까. 한가지의 완성품을 만들기 위해 물 밑에선 엄청난 물갈퀴질을 하고 있다는 것을. 하지만 물갈퀴질을 덜 하면서 시간은 놀라울 정도로 줄어드는 방법이 있다는 것을. 저런 폐쇄적인 스타일의 딴지를 걸면, 기운이 빠진다. 모든 걸 급히 끝내버리거나 그 사이 뒷단에서 이뤄지는 불필요한 작업은 업무로 생각하지도 못 하는 상황이라면 혁신하려는 시도라도 함께 해 봐야 한다고 생각하는데, 말 꺼내기가 무섭게 반발한다. 워크샵이라도 한 번 같이 참석하고 말했으면 좋겠다만. 모르겠다. 포기했다. 지금은 그냥 내가 이상한 사람인가 싶다. 나는 정말로 설득하는 방법을 모르고 있는 것일까?

스케치 커뮤니티엔 아예 포토샵이 뭔지 잘 모르는 사람도 있다. 설치돼있지도 않다는 말에 놀랐다. 그만큼 시대가 많이 변했다. 디테일한 그래픽 요소를 작업하지 않는 이상 포토샵이 굳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게 된 것이다. 이미 여러 회사에서 스케치로 작업하길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만약 지금 다른 곳을 가게 된다면 자칫 아무 것도 모르는 바보가 될 지도 모른다. 포토샵은 내 작업 속도를 따라가지 못 하지만, 스케치는 앞서가고 있다.

그래서 사이드 프로젝트는 필수다.

댓글 남기기

이메일은 공개되지 않습니다. 필수 입력창은 * 로 표시되어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