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어둠

소풍인 것 같다. 어릴 적 자주 갔던 큰솔밭스러운 딴세상 풍경이 어스름히 펼쳐져 있다. 빛이 새어 들어오지 않을 정도로 나무가 울창한 숲에서 우리는 무언가를 찾고 있다. 보물찾기일까? 아니다. 나는 약간의 공포감에 휩싸여있다. 돌아가는 길을 찾지 못해 겁을 먹었는지도 모른다. 헤매고 헤매다 발길이 멈춰진 두 갈래길가운데서 우리를 내려다보는 늙고 검은 나무의 형체. 나무는 둘레를 재기 힘들 정도로 거대했고 여러 갈래로 갈라진 굵은 뿌리 사이로 동굴처럼 구멍이 뚫려 있다. 빨려들 것 같은 음산한 기운에 심장이 두근거리는 우리는 서로에게 눈짓을 보낸다.

“들어가 볼까?”

같이 있던 친구들 중 몇명만이 호기심 그득히 굴 속으로 머리를 들이민다. 생각보다 깊고 긴 굴이 어느 순간부터 조금씩 좁아지기 시작한다. 몸이 점점 꽉 낀다. 도저히 빠져나가기 힘들다. 따라오던 친구들의 인기척을 느낄 수 없다. 아..이건 시작하는 게 아니었어. 돌아갈 수도, 앞으로 나아갈 수도 없다. 헉, 숨이 막혀 온다. 순간.

어떤 힘에 의해 내 몸은 튕겨져 나간다. 내동댕이 쳐질 만한 높이인데 내 몸의 모습은 전혀 느껴지지 않는다. 단지 내 시선만이 느껴진다. 눈앞에 펼쳐진 무섭고 어마어마한 공간. 사찰에서 보던 붉은색 나무 기둥이 곳곳을 받치고 있다. 기둥을 양 쪽에 둔 나무 계단을 천천히 밟고 올라선다. 하나 둘…계단 끝의 문을 열자 한 평 남짓한 공간을 지나 다시 내려가는 계단이다. 또 하나의 문을 마주하고 조심스럽게 문을 연다. 나는 내 눈을 의심한다. 아까보다 더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그 어둠 속에서, 푸르고 투명한 물이 한가득 차 있다. 물은 생각보다 깊은데 속은 훤히 들여다보인다. 사람들은 그 물 속이 들어가기 위해 줄지어 서 있다. 어찌 된 일인가. 나는 그 물에 자연스럽게 빨려 들어간다. 물 속에서 헤엄을 치고, 물 위를 유유히 떠 다니기도 한다. 이곳이 천국일까? 고생 끝에 낙이 온다고, 나는 지금 신선 놀음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때였다. 물 속에서 갑자기 나는 누군가가에게 쫓기고 있다고 느낀다. 얼른 이 곳을 빠져나가야 한다. 나는 물 밖으로 솟아올라 기둥 사이를 빠르게 날아 도망치며 출구를 찾는다. 역시…이번에도 나는 날 수 있다. 쫓아오는 사람이 있는 건지 없는 건지, 나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계속 도망만 친다. 내가 떨어진 곳이 유일하게 알고 있는 입구인데, 어디인지 찾을 수가 없다. 도망치고 또 도망친다. 어디로 가야하는 거지?


아 놔….

시계를 보니 이미 집에서 출발해야 하는 시간을 훌쩍 넘겼다. 꿈에서 이 장소가 나오면 난 늘 대지각이다. 왜지, 왜 항상 같은 꿈을 꾸는 거지? 기묘하지만, 꿈 이야기를 쓰다 보니 너무 재미있는 밤이다.

학교에서 해본 생각

졸업 후 학교를 찾아갔다. 도대체 이게 몇 년 만인지. 학교는 많은 발전을 했지만 우리들의 스무살은 그대로 간직해 주고 있었다. 학교 이곳 저곳에서 우리 반 사람들이 홀로그램으로 나타났다. 그리고 그 추억들은 우리의 담소 거리가 되었다. 그때의 장면들을 하나 하나 소환 하노라면 코끝이 찡할 정도로 懐かしい하다.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교정을 산책하고 사진을 찍었다. 학교는 너무 아름다웠다. 걸음을 뗄 수 없을 정도였다. 왜 그땐 학교가 예쁘다는 생각을 하지 못했던 것일까? “학교는 졸업해야 예쁘다”라고 오늘 친구가 명언을 남겼다. 하지만 어쩌면, 그때의 생각까지 기억할 수 없을 정도로 세월이 많이 흐른 것일지도 모르겠다.

겨우 연락처가 남아 있는 친구들에게 전화를 걸고 톡을 주고받았다. 그동안 아무 일 없었다는 듯. 마치 어제도 통화를 한 것처럼. 그냥 툭 하고 말을 걸어도 서로 반갑기만 하다. 우리가 언젠가는 다시 모두 모일 수 있을까? 다들 어디에서 뭘 하며 지낼까. 친구와 이야기하면서, 지금은 연락이 끊어져 버린 그들의 이름을 아직도 기억하고 있는 것에 놀라워 했다. 정말 진한 추억이다.

만약 타임슬립을 할 수 있다면 이 때로 돌아가 정말 제대로 즐겨보고 싶다. 이곳에서.

달리기

참 신기하지. 어떻게 같은 선에서 출발한 사람들이 시간이 지났을 때 저마다 다른 지점에 서 있는지. 세상에는 정말 다양한 사람들이 자기만의 지점에서 나름의 페이스 조절을 하고 있다.

나아지거나 뒤쳐진다는 생각 없이 소소하게 행복한 사람들. 오늘의 업무를 완수하고 퇴근 후를 생각하면서 행복해하는 사람들. 노력하지 않지만 불만이 많은 사람들. 우물 안에 갇혀서 자기가 세상 최고라 여기며 사는 캐릭터도 있다. 지금 내 나이와 연차에서 어쩌면 가장 많은 모습들이 보이는 듯하다. 격차의 벌어짐에 가속이 붙는 시점이다.

잘나가는 탑오브더탑 디자이너들의 이야기가 여러 매체들을 통해 전달되고 있다. 세상에 디자이너는 무수히 많다. 그들 중 매체에 소개되는 디자이너는 몇 퍼센트나 될까. 그런 사람들을 보면서 꿈을 꾸기도 하겠지만, 실현되기 어려울 때 조바심이 나거나 자괴감이 들거나 불안감에 빠져드는 사람들도 있지 않을까.

현재에 만족하지 못하게 되는 나.

좋은 자극을 받아서 유명 디자이너 분들에게, 주변 사람들에게, 소셜 매체들에게 고맙다. 다행이다. 그렇다고 좌절하지 않는 건 아니다. 현실적으로 어려운 게 분명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길은 반드시 있었다. 그걸 느낄 때마다 얼마나 나에게 고마웠는지 모른다. 길을 찾으려 노력했기 때문이다. 잘했어.

지금 내가 서 있는 시점에서 나의 역할에 대한 불만족은 안팎으로 어떤 영향을 끼칠까. 이건 운명이 아닐까, 노력에 따른 걸까, 운도 따라주는 거 아닐까. 많은 생각을 하게 된다. 하지만 결국 같은 결론에 도달한다. 정신 못 차렸던 때도 있었던 거고, 운이 나빴을 수도 있는 거야. 순탄하게 현재를 헤쳐나면서 발전하는 사람은 생각보다 많지 않아. 그러니까, 더 달려 보자.

월급루팡들의 말을 한 귀로 흘리는 연습을 해야겠다. “난 여기까지인것 같아. 그냥 얇고 길게 월급 받으면서 회사 다닐래.” 에너지 뱀파이어같은 이런 최악의 말 좀 하지 말아달라고 말하는 내 모습을 상상만 해 본다. 못된 오지랖 부리지 말고 그들은 그들 인생을 행복하게 사시기를. 난 그들에게 더 열심히 나를 발전시키는 슈퍼루키의 모습을 보여주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