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을 현실에 이어

Bon Jovi – It’s my life. 드럼을 시작하기에 적당한 노래이자, 나의  완주곡이다. 스네어 한 번만 때려도 엄청난 아드레날린이 분비되었던 그때는 스트레스를 모르고 살았고 아주 건강했다. 전자 드럼에서 처음으로 리얼 드럼을 쳤을 때의 짜릿함. 너무 신나는 나머지 치는 강도를 조절하지 못했고 내 드럼 스틱은 금방 망가지기 일쑤였다.

지금으로부터 약 7년 전? 사내 밴드는 주 2회 이상 꼭 모였다. 모두가 즐겼던 연습, 그리고 몇 번의 공연. 새로운 경험이 계속되었다. 늘 얌전한 것만 듣던 내가, 음악을 고르는 시야가 넓어졌다. 음악을 대하는 자세도 달라졌다. 무엇보다도 좋은 사람들을 많이 얻은 것이 최고의 수확이다. 밴드 활동은 내 삶을 풍부하게 만들어 주었다.

그런데 그 동호회가 위기에 처한 건, 갑자기 동료들이 줄줄이 퇴사하고 회사가 어둠의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면서였다. 곡을 직접 만들고 녹음을 하고 앨범을 내자고 하셨던 사운드팀 팀장님도 갑자기 퇴사하셨다. 어째 좋은 일만 계속된다 생각했다. 그렇게 동호회가 해체 되었고 나는 퇴사를 했다.

하던 걸 마무리하지 못하고 도중에 그만두면 찝찝함이 남기 마련이다. 나도 아직까지 미련이 남아 있다. 드럼을 제대로 치지 못한다는 것, 좀 더 성공적으로 공연하지 못했던 것이 계속 아쉽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나와 비슷하게 아련한 추억을 갖고 계신 전직 기타리스트께서 합주를 다시 하지 않겠냐고 제안해오셨다. 이렇게 황송할 때가! 기쁘게 감사하게 받아들였다. 같이 합주할 세션은 대부분 연세가 있는 분들이다. 나도 보컬을 섭외했다. 같이 연습했던 동료로.

인생에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을 재연하고 싶은 마음은 다들 갖고 있지 않을까? 추억은 삶을 행복하게 한다. 음악과 함께 했던 기억이 뜨거운 감성을 쏟게 한다. 김중혁 책 <모든 게 노래>에서 작가는 이렇게 말했다. “좋은 음악은 시간을 붙든다” 저마다의 사연을 들고 만나는 올드한 구성원들이 하려는 것은 단순히 악기 연주가 아닐 것이다. 과거와 현재를 잇는 마법의 끈을 만들려는 것이다. 오늘의 일도 어제의 일도 잊지 않기 위해서.

그럼 연습 때 봬요 멤버님들!

좋은 리더

하늘의 별 따기. 옛날 속담인데 너무 잘 만든 것 같다. 요즘 같은 때 쓰라고 나왔나 보다. 좋은 리더를 만나는 것이 하늘의 별을 따는 것 만큼 힘든 일이라니. 인간에게 아무리 바이오 리듬이 있다지만 요즘만큼 감정선이 극과 극을 치달았던 일이 있었던가? 정말 참을 수 없을 만큼 화가 날 때가 있다. 리더가 제 역할을 하지 않은 채 그 자리에 앉아 있을 때, 그를 따라야 하는 사람들은 얼마나 불안할까. 어찌 된 일인지 시간이 지날수록 괜찮은 리더를 만나기가 힘들어진다.

기분파, 정치가, 가식형 등 여러 타입을 만나 보았다. 그러나 디자이너에게 있어서 가장 나쁜 리더란, ‘디자인을 못하는 리더’라 생각한다. 리더의 디자인은 리스펙 할 수 있어야 한다. 본보기가 되는 디자인에서 인사이트를 얻고 리더의 의견에 귀기울일 수 있는 것이다. 가장 기본적이고 중요하고 당연한 요건이다. 표현이 되지 않는데 구성원의 디자인을 디렉팅할 수 있을까? 기본적으로 실력이 인정되어야 그 사람의 리딩을 신뢰하고 따를 수 있는 것이다. 실력이 부족하면 그 점을 인정해야 한다. 많은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보아야 한다. 구성원들의 의견을 겸허하게 받아들여야 한다. 자기 생각이 옳다고 하는 순간 늙고 있음을 알아채라고 누군가는 말했다.

누구나 언젠가는 리더가 된다. 하지만 괜찮은 리더는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니다. 괜찮은 리더는 디자인 스킬은 기본이고, 모든 경험들이 축적되면서 리더로서의 자질이 갖춰진다. 좋은 디자인 리더가 되기 위해서는 한 시도 디자인을 멀리 해서는 안 된다. 그게 기본이다. 연차가 쌓여서 저절로 리더의 자리에 오를 것을 기대해서는 안 된다. 시간, 운, 인맥, 라인은 적당히 기대고 기본기나 다지도록 하자.

책장# 시크하다

간만에 북리뷰.

언어 천재라고 불리는 조승연 님의 책을 처음 접해 보았다. 이것이 웬 횡재냐. 저자 강연 초대권이 들어있다는 문자를 받고 당장 앱으로 접속한다. 방송을 보면 조승연 작가가 말을 너무 잘 해서 머리에 쏙쏙 들어왔다. 그런데 작가의 목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는 기회가 생긴 것이다. 그게 이 책을 구매하게 된 단 하나의 이유다. 책을 읽어보니 책 역시 눈에 쏙쏙 읽혔다. 이것은 일석이조? 가볍고 재미있는 에피소드를 많이 들려주어 금방 읽을 수 있었다. 무엇보다 지금까지는 크게 관심을 두지 않았던 프랑스 사람들의 성향에 매력을 느꼈다. 지금 내가 이 나라에 살면서 겪는 답답한 일들, 도망치고 싶은 일들에 대해서 프랑스 사람들이 시원하게 풀어주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렇다면 일석삼조?

작가는 10여 년을 미국에서, 6년 정도를 프랑스에서 보냈는데, 프랑스에 대한 느낌이 여간 좋은 게 아니었던 모양이다. 함께 지낸 프랑스인들을 관찰하면서 무엇이 그들을 행복하게 하는지 정리해주는 내용이었다. 물론 경험담이기 때문에 작가는 지극히 주관적인 생각으로 쓴 책이라고 강연 서두에서 이야기했다.

프랑스인들은 각자의 개성을 중요시하고 있었다. 남이야 어떻든 상관하지 않았다. 그들 대화에서 가장 많이 나오는 단어는 ‘나’라고 한다.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가장 우선이라고 한다. 어린 시절 배우는 것부터가 달랐다. 우리는 ‘인간은 사회적 존재’라는 내용을 배운다. 가족 관계, 남녀 관계, 회사 동료와 상사와의 관계, 친구 관계, 부부 관계와 그의 가족들과의 관계 등. 수많은 관계 속에서 그들을 배려하고 신경 쓰며 지내고 있다. 학교 다닐 때는 공부를 잘하는 학생이 훌륭함의 기준이었다. 좋은 대학에 가는 게 훌륭한 거였다. 돈 많이 버는 직장에 다니는 게 훌륭한 것이고, 남들 부러워하는 남자와 결혼을 하는 게 행복한 거였다. 결혼을 하지 못하는 것, 결혼을 했는데 아이를 낳지 않는 것, 아이를 하나만 낳는 것, 내 집이 없는 것, 집 평수가 작은 것, 이건 세상의 기준으로 봤을 때 대부분이 남과의 비교 거리고 오지랖 거리다. 이곳은 나를 챙길 시간이 부족하다. 남과 비교해서 내가 행복한지를 계산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프랑스인들은 애초에 이런 교육은 받지 않았다. 좀 더 아름답게, 인생을 표현하는 방법을 배우는 것 같았다.

행복이란 뭘까?

내가 가진 나만의 주관적인 행복은 무엇인지 떠올려 본다. 남들과 비교하는 것이 아닌, 내 기준에서의 행복. 세상의 순리를 따라 살면서도 내가 왜 이렇게 답답하게 지내야 하는 건지 고민할 때가 있다. ‘이미 남들의 오지랖에 못 이겨 이만큼 살아온 나’와 ‘하고 싶은 대로 하면서 살려고 하는 나’사이의 딜레마. 살아온 만큼의 시간에 나는 이미 익숙해져 있다. 어쩌면 지금까지 나를 생각하고 사랑해왔을 수도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세상이 신경 쓰일 때도 많았던 것 같다. 내가 행복하다고 생각했던 순간들은 온전하게 내 기준이었을까. 앞으로도 누군가가 정해 놓은 기준에 도달하지 못한다고 느껴져 불안해하지는 않을까. 나는 얼마나 주체적인가. 지금까지 잘 ‘버텨왔다’고 생각하고 있지만, 한 번 더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 그래도 난 생각보다 꽤 나 자신에 대해 알려고 노력하는 타입이라 우길 것이다. 비록 현실과 이상의 혼란 속에서 살 수밖에 없을지라도, 그 안에서 나는 또 나를 찾으며 살아갈 것이다.

갑자기 생각나는 발랄한 노래가 있어서 적어 본다.

옥상달빛 – 가장 쉬운 이야기

어느 날, 너는 내게 말했어. “행복이란 뭘까?” 음 행복이란 뭘까. 모두들 나에게 말했어. 이 다음에 돈 벌면, 이 다음에 성공하면 그땐 행복할 거라고.

그럼 지금 우리에겐 행복이란 없는 걸까?

그래 그건 참 바보 같아 우린 지금이 행복한 순간인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어느 날, 너는 내게 말했어. “행복이란 뭘까?” 음 행복이란 뭘까. 모두들 나에게 말했어. 사는 게 너무 바빠 하늘 볼 여유조차 없다고, 가끔은 행복하고 싶다고.

그럼 지금 우리에겐 행복이란 없는 걸까?

그래 그건 참 바보 같아 우린 지금이 행복한 순간인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그래 그건 바보같아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그래 그건 참 어리석지 이 모든 게 이렇게 즐거운걸

아, 행복해요 –

星野源의 팬이다

원곡과는 다른 매력. 행복한 구스하우스 / 출처 : 유튜브

시작은 구스하우스

유튜브에서 세 명이 夢の外へ라는 노래를 불렀다. 활짝 웃으며 기타와 피아노를 연주하는 밴드는 gooseHouse라는 일본 아티스트였다. 동호회에서 기타를 배우던 시절, 나는 이 연주에 반해서 무한 루프를 시켜 놓았고 어렵게 악보를 구해 연습을 하기도 했다. 원곡이 있다는 건 나중에서야 알았다. 키 작은 남자 하나가 기타를 치며 노래를 불렀고 어떤 퉁퉁한 회사원 아저씨가 노래에 맞춰 홀가분하게 춤을 추었다. 춤을 추는 남자가 아닌 기타 치는 남자가 바로 星野源(호시노 겐). 춤과 노래가 묘하게 어울렸다. 간주 부분에서 호시노 겐과 그 아저씨가 같이 춤을 추는데 왜지? 왜 귀엽지? 이유 없이 중독됐고 자연스럽게 이 노래는 호시노 겐에 대한 호기심으로 이어졌다.

호시노 겐 풋풋했던 시절. 夢の外へ 뮤직비디오 / 출처 : 유튜브

국내에 들어온 몇몇 앨범을 들어 보았는데 신기하게도 모든 노래가 좋았다. 보통 앨범 하나를 듣다 보면 마음에 들지 않는 노래가 있어서 패스하곤 하는데, 호시노 겐 노래는 정말 신기하다. 가사는 몰라도 목소리와 리듬, 분위기 만으로도 잔잔하고 감미로웠다. 영화 ‘오라토리움기의 다마코’의 OST ‘季節’는 각자가 인생을 살아가는 속도가 있다는 영화 내용과 너무 잘 어울렸다. SUN은 지금까지 들어보지 못한 담백하고 모던한 곡이었다. ストーブ라는 음악은 지금 들어도 몇 년 전 어느 겨울날 신대방으로 가는 출근 버스에서 느꼈던 포근함을 잊지 못하게 한다. Crazy Crazy 뮤직비디오는 노래도 좋지만 드럼과 피아노 연주가 너무 신난다.

만능인 호시노 겐

노래를 듣다 보니 어느새 호시노 겐에 대한 정보들을 검색해 보는 단계에 이르렀다. 오 이 냥반, 가수이면서 노래를 만들기도 한다. 기타, 베이스, 마림바 등 악기도 여러 개 다룬다. 오랜 기간 동안 꾸준히 연기도 해 왔다. 심지어 에세이도 쓴다. 몇 년 전 그가 초식남으로 출연했던 逃げるのは恥だけど役に立つ에서 히라마사 역은 매력이 폭발했다. 그의 노래 恋와 恋ダンス는 ‘국민 댄스’로 사랑받았다.
그는 한때 뇌에 병이 있었다. 치료를 받느라 음악 생활을 잠정 중단했으나 완치 후 다시 음악가로 복귀했다고 한다. 짐작건대 다시 활동하고 나서 첫 곡이 crazy crazy가 아닐까 한다. 짐작만 하는 것이 아쉽고, 더 알고싶고, 자세한 이야기가 책에 쓰여있을 거라 생각했다. 그래서 그의 책을 하나씩 사 모으기 시작했다. 아직 몇 글자 읽지는 못했지만 차근차근 읽어가려 한다.

다 읽고 다음 책을 사자

내가 하고 있는 게 가만히 생각해보니 덕질이 아닐 수 없다. 나는 지금까지 연예인에 대한 팬심을 가져본 적이 없다. 그런데 호시노 겐과 관련된 모든 SNS 팔로우, CD 구매, 잡지 구매 등, 팬으로서 몹시 왕성하게 활동하게 되다니 스스로 놀랍다. 더구나 12월에 도쿄에서 열리는 콘서트 티켓 응모까지 신청해 놓고 당첨을 기다리고 있다. 이런 마음은 지금까지 경험한 적 없는 일이라 즐거움이 두 배가 되고, 언어 공부가 되니 세 배가 된다. 덕질을 통해 원어민 못지않게 일본어가 쑥쑥 늘길 바라며.

판소리 공연 ‘오셀로’를 보다

덕수궁 돌담길을 몇 년 만에 걷는지. 공연 시간이 가까워져 사촌동생과 나는 밥 대신 간단하게 와플과 커피를 사서 정동극장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판소리 공연은 난생처음이다. 기대를 할 수도 하지 않을 수도 없었다. 아무것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저 그동안 접하지 않았던 새로운 것을 경험한다는 것이 설렜다. 제목은 판소리 오셀로. 오셀로 이야기를 판소리로 풀어나가는 것이라 한다. 상상할 수가 없네.

판소리 무대라 함은 무엇인가. 스탠드 마이크가 하나 있고 옆에는 북 치는 그분의 이름이 뭐더라, 고수라고 한다. 고수의 북 장단과 추임새에 맞춰 소리꾼이 부채를 접었다 펼쳤다 하면서 노래와 말을 하는 모습이 아니던가. 그런데 공연장으로 입장하는 순간 아, 나는 정말 아무런 준비도 하지 않고 이 공연을 보러 온 것이다. 마치 뮤지컬과 같은 무대 디자인. 나는 크게 반성하며 자세를 고쳐 앉았고 연이어 ‘우와, 우와’를 외쳤다. 공연 시작을 알리는 방송이 흘렀다. 네 명의 연주자들이 무대 뒤에 차례로 입장해 음을 맞춰본다. 두근거림은 배가 되었다.

잠시 후 소리꾼이 등장하였다. 등장 시점에서 그녀는 동양의 기생이라고 하였다. 책을 읽어주며 노래를 하는 것이 그녀의 첫 번째 역할이었다. 첫 번째 역할이라고? 그렇다. 등장인물이 여러 명일 테니 당연히 여러 명의 소리꾼이 등장해 연극이나 뮤지컬 같은 형태로 연기를 할 거라 생각했다. 그런데 혼자서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역할을 소화했다.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두 명이 대화하는 연기를 하다가, 한 명이 독백을 하다가, 다시 기생이 되어 이야기를 들려준다. 아 그렇지, 이것이 바로 판소리의 형식이었지. 각각의 역할이 너무 명확하게 구분되었다.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판소리에 대한 편견이 싹 사라지는 공연이었다. 전통적인 것을 자꾸 없애기만 하는 한국의 현상을 줄 곳 이야기해 왔었는데, 그 속에서도 이렇게 우리 문화를 발전시키는 모습도 있었다. 관심을 더 가져보고 싶었다. 구석 구석을 살펴보면 신세계는 충분히 맛 볼 수 있다.

소리꾼은 놀애 박인혜 님이라고 한다. 이분이 이 공연의 작창을 전부 했다. 사촌동생은 춘향가로 이 소리꾼을 처음 접했고 그 후 팬이 되었다고 한다. 나는 오늘로 팬이 되었다. 정말 신기했고, 존경스러웠다. 공연이 끝나고 여운이 가시는 게 싫어서 박인혜 님의 노래를 들으면서 집으로 돌아왔다. 이 공연의 여운이 또 있다. 나는 셰익스피어의 책을 한 권도 읽어본 적이 없다. 이름만 들어도 너무 어렵다고 느껴지기 때문이다. 그런데 오늘의 공연으로 오셀로 이야기를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아주 쉽고 색다른 방식으로. 오셀로 이야기에 가까이 다가간 나는, 결국 세계문학전집 오셀로를 구매하게 되었다. 읽을지는 미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