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웅현 강연을 듣다

올해 6월, 서울 국제 도서전에서 책을 구경하다 문학동네 부스를 발견했다. 북적거리는 가운데 북클럽 연간 멤버십을 모집하고 있었는데, 혜택 안내문의 한 부분이 시선을 사로잡았다. 인생책 「여덟단어」 의 작가 박웅현 님의 강연이라니.

「생각의 기쁨」, 「모든 요일의 기록」 을 연이어 읽으며 두 작가가 직장 동료라는 걸 알고, 그들에게 오래도록 존경받는 팀장님이 동일인물이란 걸 알게 되고, 그 팀장님이 너무나도 궁금해 읽게 된 여덟단어가 인생책이 되고, 이렇게 강연 소식을 접하게 되었을 때의 내 감정을 뭐라고 표현해야 할까. 책이 내 손에 운명의 끈을 쥐어준 것이다. 강연만은 꼭 듣겠다는 생각으로 멤버십에 가입했다. 그리고 드디어 D-day.

장비를 믿지 말 것

이번 강연은 신촌 메가박스 3관에서 진행되었다. 강연장을 상영관으로 택한 이유는 그가 최근 제작한 광고 영상과 연결되는 스토리텔링이 있기 때문이었다. ppt에는 거친 캘리그라피만이 있었고 그걸 자연스럽게 말과 영상으로 이어가야 했는데, 이를 어쩐다… 리모컨이 제대로 동작하지 않는 것이다. 심지어 무대 뒤쪽에서도 컨트롤이 안 되었다. 적막 속에서 페이지가 앞으로 갔다가, 뒤로 넘어갔다가 말을 듣지 않았다. 결국 강연자가 프레젠테이션의 스토리를 설명하기에 이르렀다.

우리는 영상을 다 볼 수 없게 되었다. 영상은 나중에 유튜브로 찾아 보면 되지만 아쉬움은 컸다. 만약 이 모든 순서들이 착착 진행되었다면 오늘의 이 강연에서 어떤 형태로든 울림을 받았겠지. 마이크 잡음이 너무 심해 말도 잘 안 들렸고, 점점 실망을 하고 있었다. 그 순간 나는 작가님의 센스와 순발력에 감탄하기 시작했다. 작가 혼자 이야기하는 시간보다는 어렵게 자리한 관객과 소통하는 시간을 더 마련하겠다는 의미로, 강연은 바로 질의응답으로 이어졌다.

눈물샘이 터지다

어떤 독자가 책에서 소개한 노래를 듣고 울림을 얻었다는 이야기를 강연 초반에 들었다. 선천적으로 아픈 아이가 태어나 병원에 입원했고, 힘든 하루하루를 보내며 아이가 낫기를 간절히 바라는 아이 엄마는 「책은 도끼다」에서 소개한 Pink Martini의 Splendor in the Grass라는 노래를 듣는 순간 눈물을 펑펑 쏟았다고 했다. 그 후로 아이 면회를 가는 길에 매일 그 노래를 들었다고 한다. 그분은 그 울림을 통해 「일상이 독서다」 라는 책을 냈고 그 책을 박웅현 작가에게 보내왔다. 박웅현 작가는 책의 일부를 관객에게 읽어 주었다. ‘울림’이 타인에게 전달되는 모습을 경험하며 가슴이 뜨거워졌다.

질의 응답이 계속해서 이어졌다. 그리고 맨 앞자리에 앉은 어느 분이 마이크를 들었다.
“아까 그 책을 보내드린 독자가 바로 접니다.”
코끝이 찡했다. 이런 감동적인 만남은 정말 처음 보았다. 아이엄마는 아이가 건강해져 지금 여섯 살이 되었다고 울먹이며 이야기했다. 객석에서 박수 소리가 이어졌다. 눈물이 핑 돈 사람이 나 뿐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퇴사예정자가 얻은 인사이트

이번 강연은 질의응답에서 얻는 인사이트가 없다면 정말 의미가 많이 줄어들고 시간이 아까웠을 것이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질문들이 영양가 높은 건강식품처럼 머리와 가슴을 풍족하게 해 주었다. 나는 질문을 준비하고 있었다. 다음달이면 퇴사 예정이었기에 불안함이 아예 없지 않았다. 내 인생의 멘토인 박웅현 님에게, CD로서 조언이나 격려의 메시지를 듣는다면 무한한 영광으로 생각될 것 같았다.
소심하게 손을 들었으니 지목이 될 리 없지. 질문은 마음으로만 간직하고 책에서 답을 찾아보기로 했다. 그때, 27살의 심리학과 전공 학생의 질문이 이어졌다. 심리학을 전공한 것이 옳은 선택인지 잘 모르겠다고, 돈도 안 될 텐데, 하지만 이미 등록금은 다 내 버린 상태라고.
그에 대한 답변에 나는 눈물을 주르륵 흘리고 말았다.

내가 한 모든 선택은 다 잘 된 겁니다.
그 이유는, 되돌릴 수 없기 때문이에요. 정리해보면, 내가 한 모든 선택은 (되돌릴 수 없기 때문에) 다 잘 된 겁니다. 따라서 자기가 한 모든 선택이 옳은 것이 되게 노력해야 합니다.

‘당신은 정말 충분한 고민을 한 후에 49:51로 그 선택을 한 것입니다.’ 라는 말에 울컥 쏟아졌다. 지금 이 곳에서 오랫동안 일 해 온 것도 나의 결정이었고, 퇴사를 결심한 것도 내가 많이 고민한 결과다. 내가 한 선택은 다 옳다. 아니, 옳다고 단언할 수 있게 노력하면 되는 것이다. 정말 큰 힘이 되었다.

강연이 아무리 길다고 한 들, 유명한 연사가 온다한 들 영감을 얻을 수 없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까. 그래서 나는 인문학 강연이 너무 좋다. 삶의 가치를 찾아가는 나를 발견할 수 있기 때문이다. 고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