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점점 빠르게 흐르고 있음을 실감한다.

세상의 고초를 다 겪었다고 생각했는데, 시간이 지날수록 더 많은 일이 일어난다. 당황하기도 하고, 후회하기도 하고, 창피하기도, 화가 나기도 한다. 기뻐하기도 하고, 배가 아프도록 웃기도 한다. 사람들도 다 이러고 산다. 이게 삶이라는 생각이 든다. 이 사이트는 나의 하루하루 경험을 기록하는 게 목적이 되고 있다. 아프고 힘들었던 일들을 기록하고 돌아보면 다 별것 아니다. 왜 기분이 나빴었는지, 왜 그땐 그렇게 화가 났었는지 반성하기도 한다. 아니, 아예 생각나지 않는 것도 있다. 누군가 내 자존감을 무너뜨렸던 일들을 페이지에 기록하면 시간이 지나 데스노트가 되어버리고 만다. 창피하다고 느껴지면 지우거나 수정하거나, 깨달음의 글을 쓴다. 그런 일들이 있었다는 걸 다시 한 번 읽어볼 수 있다는 건 기록의 큰 장점이라고 생각한다. 어린 나이에 그토록 일기를 쓰라고 선생님이 말씀하실 때 싫어하는 아이들이 있었던 반면 난 그게 싫지 않았다. 그림 그리는 것이 좋았고 일기보다 그림이 더 많았으니까. 안타깝게도 나의 초등학교 시절 일기장은 전부 사라지고 없다.

디자인을 시작한 지도 어느덧 17년이 지났다. 내 디자인이 얼마나 풍부하고 깊이가 있는지는 아직 잘 모르겠다. 강산이 바뀌고, 트렌드가 몇 번이나 바뀌는 것을 경험하면서, 앞으로 디자이너로서 어떤 준비를 하고 어떤 경험을 해야 하는지 매일매일 생각하고 스스로를 괴롭히며 어른으로서 성장하려는 노력을 아끼지 않는다. 아직도 디자인이 재미있는 걸 보면 잘 고른 직업이다.

여행, 도쿄

‘새롭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다는 이유로, 도쿄를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다. 일본어를 하나도 몰랐을 때 친구를 만나러 도쿄에 갔었다. 낯선 도시를 거닐던, 붉은 건물과 눈 쌓인 배경으로 사진을 찍으며 놀았던, 케이크를 사서 신나게 송년 파티를 했던, 디즈니랜드에서 가장 시끄럽게 놀았던 일 등 아직도 생생하게 기억하는 그곳이 나의 첫 번째 일본 여행지 도쿄였다. 몇 년 후 다시 그 친구와 함께 두 번째 여행을 했다. 그때는 여름이었다. 유람선을 타고 유유히 강을 따라 내려가며 다리마다 설명을 들었던 일, 디즈니씨에 가서 놀이기구 하나를 반복적으로 타며 또 한 번 성가시게 다녀본 일, 오사카로 가는 신칸센을 타고 가며 오벤또를 사 먹었던 일. 그 후로 나는 도쿄에 가지 않았다.

그리고 지난 10월 말, 다시 도쿄 여행을 하게 되었다. 일본어를 알게 된 뒤로 도쿄는 처음이었다. 눈에 글자가 보이기 시작하니, 그동안 봐 왔던 것보다 훨씬 다양한 풍경들을 만날 수 있었다. 도쿄를 멀리했던 건 어쩌면 내 시야가 좁았기 때문이었을지 모른다. 현상 맡긴 사진을 찾아와 보니, 사진들이 모든 걸 말해주고 있었다. 이게 다 일 거라는 어떤 그런 편견은, 이제 필요하지 않게 되었다.

십일월, 서촌

5년만에 만난 친구와 서촌에 다녀왔다. 육아로 지친 친구는 오랜만에 만나 자유를 만끽하고 싶어 했다. 서촌은 소소한 즐거움을 느끼기 좋은 곳이었다. 20년지기 친구를 만나 순수했던 어린 시절을 추억하고, 많은 이야기를 했다. 아늑한 곳곳의 분위기는 친구의 육아 스트레스와 나의 업무 스트레스를 풀기에 아주 적당했다. 책을 보고, 커피를 마시고, 뜨개질을 하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편안했다.

아트북 서점. 몇 권 지를 뻔 했다.
테이블.
푸른 양귀비. 자세히 들여다 보아야 카페라는 것을 알 수 있다.
소록도 박물관. 고통스러웠던 소록도의 키워드들.
통인시장 기름 떡볶이.
잡생각은 버릴 수 있도록. 텅 빈 벽에 조명만이.

오래된 필름

묵혀 둔 필름을 현상했다. 오래돼서인가? 몹시도 희한한 컬러가 잔뜩 나왔다. 필름 현상소가 얼마 없어서 서랍에 모아 둔 채로 깨끗이 잊어버렸다. 그러다 도쿄 여행 전날, 문득 카메라가 떠올랐다.  보호 커버로 대충 싸서 보관한 미놀타 x-700과, 자리 차지만 하고 있던 필름 몇 롤. 그렇지 몇 년 전인지는 모르겠는데 나  오사카 여행에서 필카 썼음.
사진을 보니 적어도 7년은 된 듯하다. 필름 두 롤에 장소도 다양했다. 그게 마지막으로 찍은 사진일 테니까, 카메라도 방치한 지 그쯤 됐겠지. 그때 샀던 새 필름들은 이미 유효기간이 지나버렸다.
이제 다시 사진 찍어야지.

오사카의 어느 시장에서. 노인 분들이 바둑 비슷한 걸 두고 계시는 풍경이 고즈넉하고 담백해보였다.
오랜만에 사진 찍자며 만났는데, 때마침 비가 내렸다.
이것은 아마도 경복궁.
우산도 쓰고 카메라도 들고. 하지만 사진은 운치있게 나오지.
비가 내리면 이런 분위기다.
광장시장.
마약김밥을 좋아하는 그녀.
10년 전 우리집.

말하기와 글쓰기

“먼저 본론의 핵심 문장을 적는다. 그 다음 결론을 적어본 뒤, 듣는 사람이 흥미를 가질 수 있는 가벼운 내용으로 서론을 구성한다. 다음은 본론에서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들의 이유나 사례를 키워드로 나열해 본다. 그리고 각각의 키워드에 살을 붙여나가는 방법으로 내용을 구체화시킨다.”

이것은 발표를 위한 콘텐츠 작성 과정이다.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것은 북리뷰를 쓰기 위한 개요 작성 과정과 매우 흡사했다. 흥미롭게도 위의 내용은 「서민적 글쓰기」에서 북리뷰 뼈대 만들기 과정으로도 소개되어 있다. 「대통령의 글쓰기」에서도 글쓰기의 방법으로 비슷한 내용이 있다.

말을 할 땐 언제나 무의식적으로 위와 같은 과정을 거쳤을 거라 생각한다. 표현하는 수단이 다를 뿐, 이야기의 목적과 듣는(읽는) 사람이 동일하다면 말하기와 글쓰기가 향하는 길은 같다. 상대방에게 이야기가 제대로 전달되는 것이 목적일 것이고, 뇌에서는 나도 모르는 알고리즘이 열심히 짜여지고 있을 것이다. 소소하게 대화할 때까지도.

가끔 생각 없이 내뱉으면 상대방에게 상처를 주기도 한다. 이것 또한 말하기와 글쓰기가 비슷한 성질을 갖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얼마나 신중한지에 따라서 무게와 깊이가 달라진다는 것이다. 많은 사람 앞에서 메시지를 전달할 경우에는 더욱 꼼꼼한 준비가 필요하므로 충분한 시간과 이해가 필요하다.

서툰 글솜씨라도 공을 들여 하나의 글이 탄생했을 때의 뿌듯함이란!! 그리고 말하기와 글쓰기가 이렇게나 깊게 연결되어 있으니, 언젠가는 책 한 권을 내지 않을까? 재치 있는 입담꾼이 되어 수십 수백 명 앞에서 강연을 하는 날이 올 수도 있지 않을까? 문득, 싱겁지만 설레는 상상으로 부풀어 있다.